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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사역자 호나씨 "미키마우스 반창고 받으러 교회 나갔다 전도사 됐죠"

한국어까지 4개 국어 구사
"조국 몽골·북한 복음화가 꿈"

LA의 몽골인들에게는 든든한 대변인이 있다. 몽골커뮤니티의 '입'인 호나(30.사진)씨다.

본명은 '콘츠측 샤라브쟘츠'다. 몽골이름은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그렇듯 영어이름인 호나를 주로 쓴다.

그녀는 언어의 축복을 받은 몽골 사역자다. 모국어와 러시아어 한국어에 영어까지 4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또 미주장신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딴 여전도사이기도 하다.

언어에 신학까지 겸비했으니 몽골교회 뿐 만 아니라 한인교회나 미국교회에서까지 그녀는 통역 1순위로 초빙된다. 몽골인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타 커뮤니티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태어나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던 그녀가 인생의 반전을 맞은 것은 1994년 교회를 나가면서다. 그 계기는 일회용 반창고 때문이다.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반창고 수집이 유행이었어요. 외국 상품이 넉넉치 못한 때여서 그랬나봐요. 친구가 교회에 같이 가면 미키마우스 반창고를 준다는 말에 나가게 됐죠."

첫발을 디딘 교회가 새생명교회였다. LA출신 한인 선교사로 몽골 사역도중인 2006년 북한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최순기(당시 61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다.

"최 선교사님은 제게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였어요. 유머 넘치는 그분의 설교는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그후 교회에 살다시피한 그녀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대대로 내려온 불교집안에 완고한 변호사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서 쫓아냈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당장 생계와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그녀가 선택한 돈벌이 수단이 한국어였다. 몽골에 한인 선교와 이민 붐이 일면서 통역이 태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책을 붙들고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다. 존대말과 한문이 어려웠지만 반년 만에 말문이 트였다.

"한국어는 저를 먹여살린 언어에요. 그 덕에 공부하고 기독교인으로서 꿈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2006년 LA로 건너왔다. LA의 한인 선교사가 17년전 몽골에서 뿌린 복음의 씨앗이 다시 LA에서 역선교의 꽃을 피운 것이다.

지난해 미주장신대를 졸업한 호나씨는 올해로 4년째 시미밸리지역 한인교회인 한우리교회 유년부 전도사로 사역 중이고 지난해 1월에는 오렌지카운티몽골교회(OCMCC)도 개척했다.

몽골기독교인으로서 호나씨의 꿈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LA몽골인들을 전도해 모국을 복음화하는 것이 그녀의 우선 목표다.

호나씨에 따르면 몽골에는 2006년 건국 800주년을 기점으로 샤머니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무당들은 징기스칸의 영이 1000명의 몸을 빌어 환생하면 다시 몽골이 부국강병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터무니 없는 말을 믿고 따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죠. 미국에서 교육받은 몽골기독교인들이 돌아가 전도해야 합니다."

그녀의 최종 선교 목적지는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이다.

"몽골과 북한은 30일 무비자 협정이 맺어져 있어요. 몽골인이면 누구나 언제든 제재없이 북한에 갈 수 있죠. 한국인들이 못하는 동토의 복음화에 적임자가 몽골기독교인들입니다."

미주 중동과 북한까지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망울에서는 그녀의 조상들이 개척한 초원이 보였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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