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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애비뉴]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봄을 여읜 그대에게' 블로거 '미호할매' 님의 글

얼마 전에 집을 숏세일로 내놓자 사람들의 방문이 시작됐다.

투자자들에겐 이 위기가 곧 기회일 것이다. 난 왜 저들처럼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지 못하는가 하는 자책은 얼른 잊기로 했다.

남편은 '왜'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보내느냐며 고함을 쳤다. 자신의 공간에 신발 바람으로 들어서는 방문객들의 거침없음과 약속없이 들이닥치는 무례함에 화를 내며 문 열어주기를 거부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강아지는 낯선 방문객들을 향해 악착같이 짖어댔다.



나는 프라임에 속하지 못하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갖고 있었다. 집값이 한창 상한가를 칠 때 에퀴티를 뽑아 이 집을 샀다. 렌트가 정지되면서부터 매달 나가는 모기지 변동이 끝나고 훌쩍 뛰어오른 이자율,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파트 1베드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2베드를 얻기로 하고 이것저것을 미련없이 버리고 요것저것만 가지고 가자고 계획을 짰다. 그리고 조금씩 버리는 연습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두마리의 고양이와 두마리의 강아지의 거취였다. 어쩌면 나와 남편의 거취보다 훨씬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다. 누군가에게 입양을 보내거나 아파트보다 비싼 하우스를 렌트하거나 하지만 누가 짐승 네 마리를 데리고 온다는 테넌트를 환영하겠는가.

손바닥 만 한 앞 마당에 물을 주던 아침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몇 그루의 유실수를 심고 키 작은 나무에 열리는 주먹만한 감들이 너무도 신기했던, 덜 익은 복숭아를 따먹으며 수확기 농부의 풍요로움을 한껏 느꼈던, 이파리만 무성한 살구나무와 자두나무에게 개살구 같은 놈이라며 욕을했던, 한 해를 못견디고 죽어버린 대추나무를 뽑아내며 농장 아저씨만 원망했던 기억들이 오간다.

걸레질 하던 마루 색깔이 참 은은했구나 새삼 생각한다. 주방 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곱기도 하다.

한번도 불을 지펴본 적 없는 벽난로의 벽돌이 유난히 운치있게 눈에 들어온다.

복도 수납장이 그렇게 깊고 넓은 것이었는지까지도, 새삼스럽게 구석구석이 다 오늘따라 이렇게 새로워 보이는 건 왜일까. 내 작은 행복들이 여기서 숨쉬고 있었던 걸 난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이 집을 내어주고 우린 어디로 가게 될까? 징하게도 다정다감한 내 이웃 소냐에게 어떻게 이별의 말을 건낼까? 리사이클 통 한쪽이 깨어졌다고 시티홀에 얘기해 새걸로 교체해 둬야 하는건 아닐까? 정자 만들자고 사놓았던 거라지의 나무들은 다 어떻게 하지?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때 내 발길은 떨어질까?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의 출발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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