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정조는 개혁 아닌 '보수 군주'…그 반대쪽서 혁신 꿈꾸던 강이천(천재 이상주의자·강세황의 손자)

군주와 맞선 명문 자손 강이천, 문화투쟁서 패배 '사기꾼' 몰려
18세기가 문화 황금시대였을까…역사의 통념 시원하게 뒤집어

조선시대를 통틀어 논쟁의 최대 핫코너는 18세기다. 조선후기 그때는 과연 문화의 황금시대였을까?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그걸 진경시대(眞景時代)라고 호언한다.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낸 단원 김홍도 미술 등이 흐드러졌다는 주장이다.

역사학계도 18세기에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영예스런 호칭을 부여했다. 다산 정약용 등의 실학사상도 이때 발전하지 않았던가.

우리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그건 혹시 '역사 부풀리기'는 아닐까? 성리학이 사회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과도한 반작용은 아닐까? 18세기가 설사 황금시대라고 하자. 뒤 이은 19세기 최악의 실패는 어떻게 설명할까? 세도정치의 폐해 구한말의 허둥지둥과 엉뚱한 쇄국주의 노선….



이 책은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실은 많은 이가 '철옹성 18세기 이미지'에 의구심을 품어왔는데 지은이는 "애초부터 잘못 그려진 그림이요"라며 문제제기한 것이다. 타깃은 정조다. 그가 개혁군주라는 통념부터 뒤흔든다. 조선후기의 리더 정조는 "역사의 갈림길인"(349쪽) 당시 상황에서 몇 가지 옵션이 있었다. 막상 뽑아든 카드란 좋게 봐야 보수개혁이며 나쁘게 말해 시대착오적 성리학 근본주의라는 역주행이었다.

"정조는 도교와 불교는 물론이고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정조는 화폐의 통용에 관해서도 줄곧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그는 오직 주자의 사상만을 정학(正學)으로 여겼고 양명학은 물론 중국에서 나온 신간 서적의 수입도 엄금했다."(347쪽)

바꿔 말해 서세동점이 시작된 18세기 조선이란 20세기 말 옛 소련이나 지금의 이란과 닮았다. 그 초미의 상황에서 정조는 고르바초프 식 개방 대신 스탈린 시절로 유턴했거나 '성리학 신정(神政)'을 선포한데 불과했다. 지은이가 정조의 대항마로 내세운 인물이 뜻밖이다. 강이천(1768~1801) 학계가 주목하지 않거나 조선왕조실록이 "파렴치한 사기꾼"(358쪽)으로 몰았던 인물이다. 시골부자의 돈을 갈취해 한바탕 소동을 빚었는가 하면 조선이 멸망한다며 세상을 혹세무민한 죄목이다.

하지만 당시의 각종 문건을 주의 깊게 읽어낸 저자는 강이천이야말로 18세기 시대를 정조의 정반대 쪽에서 바라봤던 이상주의자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정조가 자기 시대를 위기로 파악해 문단속에 바빴다면 강이천은 변화와 혁신을 모색한 이단아인 셈이다. 되살아난 그는 '사회적 상상력'이 컸던 불운한 인물로 퍽이나 매력적이다. 지은이가 그를 비롯한 동시대 인물의 한숨소리와 망설임 그리고 좌절까지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강이천은 알고 보니 명문가의 아들이다. 문인이자 화가 표암 강세황의 손자였고 정조와는 당초부터 애증의 관계로 얽혔다. 강이천이 12세가 되던 1779년 궁궐에 들어가 시를 지어 왕의 칭찬을 받았다.

젊은 시절 이후 문학관이 완전히 변했다. 당나라 등 고전시의 부운(떠다니는 구름) 공담(인기척 없는 연못) 등의 시어와 굿바이했다. 유통기간이 끝난 그 세계 대신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조는 달랐다. 그런 패관소품 문학이야말로 지엽말단의 나쁜 세계라고 규정했다. 불량한 시대의 공기를 바로 잡기위해 전 조정의 에너지를 쏟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그게 과거시험 답지의 서체까지 따졌다는 문체반정이다.

혹시 그건 대원군 쇄국의 전주곡은 아니었을까? 당시 이웃 일본은 차곡차곡 서구열강을 배우는 실험을 진행했고 프랑스에서는 근대를 여는 대혁명이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어쨌거나 당대의 신세대 강이천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다. 정조와 신세대 사대부 두 세력의 헤게모니 다툼을 저자는 문화투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이다. 투쟁의 결과는 정조의 완승 강이천의 대패. 그렇게 젊은 상상력 혁신의 기운을 응징했던 조선사회는 속병이 깊어만 갔음을 우리는 안다.

통념을 뒤집는 이 신간은 낯설면서도 재미있다. 내용만이 아니라 서술방식 때문이다. 저자가 책 곳곳에 그때그때 자기 생각을 담은 연구노트나 자료 비평 등을 삽입했다. 더욱이 매끈한 스토리이기보다는 다소 구불구불하다. 무질서한 파편인 사실(史實)을 억지로 꿰지 않은 결과다. 그래서 겹겹의 중층 이야기는 드라마로 따지면 웰 메이드를 거부한 셈이랄까.

강이천은 1801년 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 신부 등과 함께 옥사했다. 그게 신유박해인데 '불량선비' 무리들의 꿈은 뭉개졌다. 이후 조선의 주류계층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보수화됐고 자폐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지배집단이 19세기 세계사의 파고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지적 즐거움을 안겨주면서도 가슴 아리다.

조우석(문화평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