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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6)] 일인치의 마술

천사의 도시-로스 엔젤레스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서 떠나기 전 날 약간의 감기 증세가 보였지만, 별 걱정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이튿날 첫 연습에 들어갔을 때는 목소리를 보호하려고 전혀 노래를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습 날은 좀 더 나아지려나 했더니, 기침이 더욱 심해지면서 가래가 낀 소리가 더 많이 났다. 그렇지만, 마지막 연습까지 노래를 안 부르면, 지휘자도 오케스트라도 합창단도 음악회 준비할 수가 없기에 마지 못해 노래를 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잘 나오는 듯 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예전에도 경험한 일이지만, 목 상태가 안 좋을 때 무리하게 연습을 하고 나면 그 다음날 성대가 완전히 부어버려서 목소리가 아예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말소리도 낼 수가 없을 만큼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버렸다. 음악회가 시작될 때까지는 30시간 정도 남아있었고, 당황한 지휘자와 나는 병원을 찾아가 방법을 모색했다. 운동선수들이 근육 통증을 순간적으로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요법을 쓰는 것 밖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근육 주사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고 부은 성대가 순식간에 가라앉기를 기다려봤다. 다행히 다음날 어느 정도 목소리가 나왔지만, 부족하다고 판단해 주사처방을 더 받았다. 조심스럽게 노래를 불러서 음악회는 무사하게 치루어냈다.

성악가에게 성대 문제만큼 어렵고 무서운 일이 없다. 주로 감기로 시작되어서 무리한 연습을 하게 되는 경우 성대가 고장이 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 중에도 성대결절에 걸려 커리어를 그만 둔 경우는 간혹 있어 왔다. 2007년 사망한 거장 테너 파바로티도 무명 시절 성대결절로 인해 성악을 한동안 포기했었다고 한다. 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는 1920년 미국 순회 공연 중 기관지염으로 시작된 병으로 인해 오페라 공연 중 무대 위에서 목으로 피를 토했고, 그 후 일년이 못 되어서 결국 사망했다. 세계 오페라계의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브코와 멕시코 출신 테너 롤란도 비야손 커플이 갑자기 광고 막에서 사라진 이유도 작년에 일어난 롤란도 비야손의 성대 종양 제거 수술 때문이다.

노래 부르는 게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사라진다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절망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역시 목소리를 잃어버린 후에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짧은 54년의 인생을 마감하게 되지 않았던가?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에게는 체력 못지 않은 정신적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있다면 정신이 아닐까? 술, 담배, 유흥을 떠난 금욕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성악가들의 악기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정신적인 행복감과 충만감이 없다면, 일 인치도 채 안돼는 작은 두 장의 근육인 성대가 어떻게 이 커다란 무대 위의 스트레스를 지탱해줄 수 있을까? 정작 노래 소리는 작은 성대를 통해 흘러나올지 모르지만, 그 소리를 지탱하는 음악성과 감동은 성악가의 온 몸과 정신을 타고 흘러나와 세상의 행복과 불행을 표현해 준다.

성악가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그들의 존재와 비존재를 결정하는 너무도 절대적인 요구 사항인 것이다. 내일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 상주하고 있는 성대 전문 의사와의 약속을 잡았다. 물론 별일이 없는 것은 느끼지만, 만약의 경우를 위해 확인하러 간다. 나의 일 인치 미만의 성대 근육 두 장이 어떻게 잘 버텨주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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