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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운타운 국가 사적지 '아빌라 어도비'를 찾아서…

현존 LA 최장수 건물엔 세월 넘어선 정갈함이…
목축업 부자가 1818년 건축…고즈넉한 공간 '한 눈에'

바로 '어도비 시스템'(Adobe Systems)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포토샵'(Photoshop)과 'PDF 리더'라는 소프트웨어다.

과연 그것뿐일까. 현대 문명의 이기로 '다시 태어난' 어도비는 원래 진흙벽돌, 또는 그 건축물을 뜻하는 옛 무어인의 언어다. 이 어도비는 미국의 건축문화, 나아가서는 문명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는다. LA 다운타운의 올베라 스트리트(Olvera Street)의 중심에 아빌라 어도비(Avila Adobe)가 있다.

국가 사적지와 캘리포니아 랜드마크로 지정된 아빌라 어도비를 찾아 본다.

일요일 오전 여유로운 아침 햇살에 원색의 강렬함이 눈부시는 올베라 스트리트를 지난다. 황토빛 벽돌이 깔린 골목길 양쪽으로 갖은 물건들이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방 혁대 등 가죽제품에서부터 장남감 기념품 장터 어디에서나 봄직한 조그만 식당이 줄지어 있다.

골목이 끝날 즈음 왼쪽으로 아빌라 어도비가 나타난다. 한 눈에 봐도 온갖 풍상을 겪었을 건물 한 켠에는 붉은 부겐빌리아가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다. 입구는 오른쪽으로 난 좁은 골목이다. 골목을 지나니 아빌라 어도비의 안마당이다. 앙상한 포도나무 넝쿨이 나지막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회랑 끝에 서니 저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즘의 눈으로는 딱히 저택이라고 부를 순 없는 규모지만 이 건물이 올해로 건축 193년을 맞는 현존하는 LA 최장수 건물이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운데 마당을 둔 정사각형 구조다. 오래된 벤자민 나무가 높이 솟아 있고 마당 건너편으로는 여러 가지 선인장들이 그 옆에는 사탕수수 몇 그루가 오래된 수레를 앞세우고 있다.

번잡한 장터를 지나와서인지 고즈넉하기 그지 없다. 옛날 그대로를 유지하느라 흙먼지 나는 마당도 전체적인 건물의 모습도 현대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다를린 없을 진대 이 마당의 공기마저 다른 듯하다. 그래서 공연히 눈을 감고 긴 숨을 들이켜 본다.

마당 끝에 있는 비지터 센터를 들렀다가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첫 번째 방은 '패밀리 룸'으로 천정의 굵은 양초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도 어도비의 특성 때문인지 쾌적하다. 주로 다이닝 룸으로 쓰였는지 원목으로 짜여진 긴 식탁과 의자들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다.

한쪽에선 도슨트(Docent 안내자)인 금발의 노부인이 서너 명의 관람객들에게 조용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 방은 부엌이다. 수도 시설이 있었을 리 만무한 당시의 부엌 모습이 이채롭다. 왼쪽의 조리대 건너편의 화덕 가운데의 커다란 물통 그리고 대식구의 식사 준비로 닳고 닳아 아직도 그때의 광택의 잃지 않고 있는 앉은뱅이 의자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후에 이 방은 목욕탕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이어서 서재겸 응접실로 쓰였을 방과 침실이 차례로 나타난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시간이 마치 오랫동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바깥으로 나오니 마당에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건축법 쉽고 단열 특성 있어…아프리카·스페인 등 서 이용

로스 앤젤레스의 주립 사적 공원(El Pueblo de Los Angeles Historic Monument) 내에 있는 아빌라 어도비는 LA의 현존하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꼽힌다. 당시 목축을 하던 부자였던 프란시스코 아빌라에 의해 지어진 아빌라 어도비는 1818년 건축 되던 순간부터 LA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1781년경 지금의 올베라 거리에는 정착 인구가 상당히 늘어났다. 목축업자들이 푸에블로 플라자 주변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룸으로써 형성된 엘 푸에블로 시(옛 LA 시)에는 미사 참여객 축제와 사업상의 방문객들로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 갔다.

멕시코 시나로아 출신인 프란시스코는 1794년에 LA로 건너와 대규모 목장인 랜초 라스 시에네가스의 주인이 되었다. 마을 처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버두고와 결혼한 그는 1810년에 LA 시장으로 선출된다. 1822년 그의 아내가 세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그는 곧 15살 처녀 마리아 엔카르나시온 세펄베다와 재혼한다. 그가 1832년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빌라의 과부인 엔카르나시온은 계속 아빌라 어도비에서 머무른다.

1846년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아빌라 어도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어도비 일대의 촌락이 주요 격전지로 변하게 되고 1847년 1월에 로버트 스탁턴 해군 사령관이 이끄는 부대가 도착하자 엔카르나시온도 집을 비우고 근처의 친척집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LA에 진주한 스탁턴 사령관은 비어 있던 아빌라 어도비를 임시 사령부 건물로 사용하게 된다.

스탁턴 사령관의 LA 진주 3일 만인 1월 13일 멕시코와의 종전 협상이 커행가 캠프(Campo de Cahuenga)에서 열리고 이후 아빌라 어도비로 돌아온 엔카르나시온은 그녀가 사망하던 1855년까지 살게된다. 현재 메트로 레드 라인 유니버설 시티 역 지상에 있는 커행가 캠프 역시 국가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1850년 아빌라의 딸 프란치스카는 독일계인 테오도르 림포와 결혼 엔카르나시온이 사망한 이후에도 1868년까지 계속 이곳에서 살았다. 이후 건물이 낡아 림포 가족이 떠나고 주인들이 바뀌면서 한때 하숙집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870년에는 지진 피해를 입어 LA 시로부터 주거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192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주해 왔던 영국 여성 크리스틴 스털링은 푸에블로 플라자 주변의 황폐화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당시 LA 타임스의 발행인이었던 해리 챈들러 등 주변의 세력 있는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아빌라 어도비의 재건과 그 주변의 정화작업을 함께 펼친다. 이후 그녀는 림포 가족의 후손으로부터 아빌라 어도비를 임대했다가 이후 지인들의 도움으로 사들이게 된다. 아빌라 어도비를 지극히 사랑했던 그녀는 아빌라 가족이 살았던 당시의 그 모습대로 유지하는데 애썼다.

검은색의 라커 테이블은 1822년. 엔카르나시온이 결혼 선물로 받았던 것으로 레이스를 만드는 등 바느질을하는 데 쓰였다. 부엌은 주방기구와 음식을 보관하던 공간으로 모든 요리는 밖에서 했다. 1850년대에 이르러 실내에 화덕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집안에서의 조리가 가능했다. 응접실은 중요한 손님에게 여흥을 제공하던 공간으로 특별한 경우에만 이용됐다고 한다.

한 쪽에 놓인 그랜드피아노는 1881년산 스타인웨이(Steinway)로 펠라코니 가족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교역을 반영해주듯 침실의 용품들의 생산지도 다양한다. 침대 스프레드는 중국산 세면대는 영국제 서랍장은 17세기 이태리 산이고 트렁크는 중국 광동 지방의 것이다.

1930년 스털링이 꿈꾸던 대로 재건된 올베라 거리는 이제 LA의 주요 관광지로 거듭나 멕시코 문화와 전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던 1963년까지 아빌라 어도비에 살면서 수많은 관람객과 단체 어린이들을 초대하곤 했다. 1971년에 일어난 실마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가고 지붕이 내려 앉아 아빌라 어도비는 5년 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마침내 1977년 7월 아빌라 어도비는 오랜 보수기간을 마치고 일반 공개를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람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다. 입장료는 무료. 주차는 올베라 스트리트 근처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주소:10 Olvera St. LA

■어도비

진흙 또는 이 진흙으로 만들어 햇볕에 말린 벽돌 경우에 따라서는 어도비로 지은 건물을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의 기원은 스페인령의 무어인에서 찾을 수 있다. 어도비 벽돌은 기본적으로 석회와 모래가 섞인 것으로 굳으면 딱딱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도비를 사용한 흔적은 몇천 년 전에 특히 건조 또는 반건조 기후를 가진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났는데 지역에 따라 그 제조기술은 바뀌었으나 모두 어도비가 가진 특수한 성질을 이용했다. 특히 나무가 부족과 건축법이 쉬운 점 어도비의 단열특성 때문에 지중해 동쪽의 건조한 지역과 북부 아프리카와 스페인 남부 그리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의 미국 남서부에서 페루에 이르는 많은 지역에서 이 공법이 이용됐다.

글.사진 백종춘 기자 jcwhite100@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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