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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올바른 자선의 의미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당연한 것 같은 얘기에도 때로 물음표를 한 번 씩 달아 보는 것이 아주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이런 물음을 한 번 해 보자. 자선은 과연 좋은 것인가? 해야만 하는가?

안 그래도 딸랑딸랑 자선냄비나 고속도로 나들목에 하염없이 서 있는 노숙자를 못 본 채 그냥 지나칠 때는 마음이 좀 언짢기도 했는데 혹시 이런 자선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우리 불자들의 마지막 목표는 성불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는 괴로움이 바다와 같다. 어떻게하든 이 물결을 헤쳐 건너가 저편 기슭에 닿아야 한다. 거긴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윤회를 벗어난 열반의 땅이다.

이 바다를 건너자면 여섯 둥치 통나무로 엮은 육바라밀이라는 뗏목을 타고 저어가야 하는데 그 첫 번째 둥치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란 나눠 주고 베풀어 주는 것이니 자선과 같은 말이다. 보시라는 통나무를 떼내어 버리면 뗏목 전체가 풀어 흩어져 물에 빠져 죽고 만다.



베풂에도 종류가 있겠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우선은 물질이다. 굶는 이에게는 밥을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주고 최소한의 옷과 잠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 그리고 병든 이에게는 약을 주고 보살펴야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자선을 행하여 죽어가는 목숨들을 살려내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종교적인 동기에서 이런 착한 일들을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요 고마운 종교다.

하지만 자선가가 넘치는 이러한 세상보다 진실로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자선할 필요가 별로 없는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고통에는 크게 봐서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생리적인 고통인데 생로병사의 개인적인 고통이다. 태어남 늙음 죽음의 문제 같은 건 결국은 각자가 신앙심으로 맞닥뜨려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병은 좀 다르지만.

다른 하나는 잘못된 사회가 주는 고통인데 이건 혼자서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 전체의 물질적 정신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수준이 높아진 나라가 문명국이요 선진국이며 정의로운 사회다. 진정한 불국토요 파라다이스다.

그런데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렇게 사회의 수준을 높이는데 종교가 오히려 걸림돌이 된 일도 드물지 않다. 문제의식을 처음부터 갖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마음 한 번 바꾸니 지옥도 천국이 되더라고 모든 것을 개인탓 전생탓 마음먹기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래도 이웃의 아픔에 대해 정말 마음 짠해 하면 얼마간의 보시를 부추겨 자위하고 잊어버리게 만들진 않았는지.

세모의 길모퉁이에서 딸랑딸랑 하는 자선냄비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들목의 무숙자도 보살펴야 한다. 우선 푼돈이나마 자선을 행함이 백번 옳다. 하지만 거기서 맴돌고 더 넓고 깊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더욱 더 이러한 자선만이 다급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여섯 둥치 바라밀 호는 혼자서 저어갈 수 없다. 여럿이 함께 타고 편대를 이루어 저 건너 열반의 땅에 이르자면 두 가지 나침반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깨침과 사회적인 깨침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거친 바다에서 갈 길을 잃고 서로 부딪치며 성불의 저 언덕에서 점점 멀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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