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신년기획 불황 극복 원년…다시뛰는 한인들-1] 우리는 파트너…상호 존중·무한 신뢰 바탕으로 '동고동락' 스물한 해
'장모집' 전영자 사장·임윤자 매니저
주종관계보단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도 섬기고 후하게 대접해야
가든그로브의 설렁탕 전문점 '장모집' 전영자 사장과 임윤자 매니저는 올해에도 새해를 함께 맞이했다. 벌써 스무 번째다.
임 매니저가 장모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의 일이다. 한 식당, 한 주인과 21년째 함께 하는 종업원은 여간해선 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이민역사가 짧은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서 한 식당이 20년 넘게 상호나 주인이 바뀌지 않고 유지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게다가 서 있는 시간이 길고 무거운 음식 쟁반을 날라야 하는 식당 웨이트리스는 이직률이 높기로 유명한 직업이다.
전 사장과 임 매니저가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를 넘어선 '파트너십'에 있었다. 오랜 세월 상호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전 사장과 임 매니저의 파트너십은 경기침체 속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나서는 한인 비즈니스 업주, 직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임윤자(55)씨는 34세이던 1990년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왔다. 먼저 미국에 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시어머니는 "미국에선 여자도 일을 해야 하고 이민 온 여자가 취직하기엔 식당이 최고"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고 임씨는 그 말에 세뇌(?)된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든그로브에 짐을 푼 지 불과 닷새만에 신문 구인광고를 보고 장모집을 찾은 임씨는 그 자리에서 취직이 됐다. 그리고 강산이 두 번 변했다.
"주인 아줌마가 워낙 사람이 좋아요. 섭섭한 적도 없었고요. 워낙 마음이 편해 옮길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임씨와 전 사장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는 서로에 대한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임씨는 사장을 "주인 아줌마"라고 부르는 유일한 직원이다.
"이상하게 사장님 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주인 아줌마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기에 계속 부르다 버릇이 됐지요."
임씨보다 14살이 많은 전 사장은 그를 "혜경"이라고 부른다. 혜경은 임씨의 딸이다. 처음엔 "혜경이 엄마"라고 부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혜경"으로 짧아졌다. 경력이 짧은 직원이나 오래 전부터의 단골이 아닌 고객이 임씨의 이름을 혜경으로 알고 있는 이유다.
전 사장은 임씨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나 대신 모든 것을 알아서 합니다. 단골들 입맛도 다 외우지요. 주문하기 전에 알아서 '살코기 국수로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니까요. 장모집은 저 사람 가게나 다름 없어요."
어느 식당 사장이라도 탐낼 만한 임씨에겐 스카웃 제의도 심심찮게 있었다. 하지만 임씨는 모두 거절했다. 옮겨봐야 더 나은 곳은 없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다른 사장 밑에서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말다툼을 안해봤다면 믿겠어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여기서 은퇴해야죠."
전 사장과 임씨의 관계를 웅변해주는 에피소드 한 토막. 장모집은 최근 가든그로브내에서 이전했다. 임씨는 이 과정에서 한 투자자에게 옛 장모집 자리에 설렁탕집을 차려 줄테니 운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독립해 내 가게를 갖는다'는 생각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한 임씨는 전 사장에게 "이런 제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 사장은 "장모집 손님은 다 네 손님이다. 네가 문을 열면 내가 문을 닫겠다"고 답했고 임씨는 그 말에 한 자락 미련도 던져버렸다.
전 사장은 임씨 뿐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도 군림하기 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처럼 대한다. 다른 사장처럼 테이블에 버티고 앉아 밥 차려달라고 하지 않고 배고프면 스스로 주방에서 꺼내 먹는다.
자연히 직원들간의 팀워크도 다져진다. 장모집엔 오랜 기간 근속하는 직원이 많다. 주방을 담당하는 직원 2명은 각각 18년 16년째 장모집을 지키고 있다. 심지어 궂은 일을 하는 타인종 직원 중에도 16년 근속자가 있다. 멕시코에서 온 '지미'다. 스무 살에 직원이 된 그는 어느덧 36세가 됐다.
장기 근속 직원이 많은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터.
"사장이 사람이 좋다"는 직원들의 칭찬만으로는 어딘 지 미진했다. 전 사장의 말에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고객은 왕이고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직원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섬기지는 못해도 후하게 대하려 하죠. 장모집이 20년 넘게 유지되는 건 다 직원들 덕이니까요."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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