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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프로의 LPGA 뒷담화-77] 캐디 조건 믿어 말어

여민선/전 LPGA 선수·KLPGA 정회원·빅토리골프 아카데미 헤드프로

상대선수가 먼저 버디를 했으니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넣어야만 했다. 신중하게 그린에 경사를 읽었다. 오른쪽으로 홀컵 한개반 정도의 경사를 읽어냈고 스피드를 잘 맞추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내 캐디가 한마디 했다.

"절대로 오른쪽이 아닙니다. 똑바로 쳐야합니다." 순간 헉! 잠시 뒤로 빠져 다시 한 번 경사를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 똑바로 갈 것 같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그린을 읽을 때 호흡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기 힘들었다. 믿지 못하는 내 얼굴을 눈치챘는지 그는 "이 그린은 모두가 오른쪽으로 경사를 보는데 절대 아닙니다. 똑바로 치세요"하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심했다. 내가 본대로 내가 느낀대로 치기로. 그리고 공에 그려놓은 라인을 홀컵 오른쪽에 맞추고 연습을 하면서 거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과감하게 퍼팅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여태까지 단 한번도 그린을 제대로 못 읽던 내 캐디가 이번 홀에선 정확하게 읽어낸 게다. 공은 얄밉게 단 한 번도 휘지 않고 똑바로 굴러갔다.

으~. 난 파를 기록하면서 연장전에서 줄리에게 마지막 자리를 내줬다. 서로 악수를 하고 축하한다고 했지만 실제 내 마음 속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함께 동반해주신 선생님들도 아쉬워 자리를 떠나시지 못했다. 참. 이게 골프인가 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장갑을 벗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왔겠는가? 아쉽고 억울하고 발길이 안 떨어졌지만 어쩌겠는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는데 민박집에서는 나를 위해 맛있는 한국음식을 준비해 주셨고 오랜만에 한국음식이 한가득 차려있는 밥상을 보니 순간 너무나 기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김치와 나물. 갈비까지. 정신없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두 그릇째 먹고 있을 때도 선생님은 오늘 벌어진 사건들을 떠올리시면서 아쉬워 하셨다. 사실 꽤 많은 한인교포들이 선수들을 응원해주시고 이곳에서는 매년 "자랑스런 대한의 딸" 이라는 문구를 집앞에 크게 써 놓고 우리들을 응원하신다.

더욱 감사한건 선수들을 위해 김밥까지 싸주시고 떡과 간식까지 준비해 오실 때도 있었는데 많은 선수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선수를 위해 만들고 싸오신 음식을 선수가 아닌 부모들이 다먹어 버린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먹은걸 어쩌겠는가? 다만 열심히 준비해서 선수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음식을 구경조차 못해본 선수들은 그분들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인사를 못드린다.

혹시라도 선수들이 무심하게 지나쳤다면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김밥에 김도 못봤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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