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한국경제] 김학수 '경동시장'
가게·좌판상인 '공존' 소비자 취향에 변하는 시장
활발한 생동감·현장 분위기 물씬
'시장 특성화' 성공한 대표적 예
경동시장의 출발은 노점시장이었다. 한국전쟁 후 일상생활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경기도와 강원도의 농촌 주민들이 경춘선.경의선.경원선.중앙선에 농산물과 야채를 싣고 성동역(지금의 미도파백화점 청량리점)과 청량리역에서 내려 좌판을 벌였다. 야채 값이 싸고 싱싱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의 발걸음이 늘자 역 부근에 노점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사는 소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리라.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돈 냄새가 나면 큰 돈 가진 사람이 움직인다. 1960년 6월 노점시장 부근에 '경동공설시장'이 문을 열었다. '서울(京 경)의 동쪽에 있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경동시장이라고 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인정이 있던 세상이라 노점상들에게 시장 안에서 장사할 수 있는 혜택을 줬다.
경동시장은 문을 연 얼마 후부터 서울시내에서 모든 농산물과 야채 과일을 가장 싸게 파는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의 특성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예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도 그런 경동시장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혜촌 김학수(1919 ~ 2009) 화백은 역사풍속화를 많이 그렸는데 '경동시장'은 그가 조선시대 시장풍경을 재현해서 그린 '남대문 밖 칠패시장' 과 '종로 육의전(六矣廛)'의 맥을 잇는 '시장 풍속화' 다.
활발한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현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가게와 좌판상인의 '공존'이다. 그 이유에 대해 오래된 가게 주인들은 좌판상인들의 매상이 가게와 비교가 안 될 뿐 아니라 가게에서 취급하지 않는 품목을 많이 취급하기 때문에 '공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동시장은 이렇게 가게와 좌판이 지혜롭게 공존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소비자의 취향을 따라갔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고추.마늘.옥수수 등 밭 작물과 버섯.고사리.도라지 등의 산채류 그리고 밤.대추 등의 견과류가 산지에서 직접 모여들 수 있도록 가게수를 늘렸고 이런 과정을 통해 '곡물과 야채는 경동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특성화된 품목에 대해 일등을 할 수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 라는 '장사 원칙'을 아는 시장경영이었다.
1970년대는 양념류.제수용품(祭需用品)과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위치를 굳혔고 건어물(乾魚物) 상가도 자리를 잡았다.
1983년부터는 인삼.수삼.꿀까지 취급하기 시작하여 경동시장 구관 2층을 중심으로 60여 개의 점포가 개설됐다.
경동시장은 이 그림이 완성된 1989년 이후에도 계속 확장했고 기와지붕이던 경동상회도 현대식 상가로 바뀌었다. 야채와 과일은 가락동시장의 개장으로 전에 비해 침체됐지만 '엄마표' 야채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계속된다.
그림 속의 경동시장 모습과 지금의 경동시장 모습을 비교하면 한국 경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발전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는 매일매일 진화하고 소비자의 취향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사하는 상인은 세상의 흐름을 눈여겨보면서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그림으로 보는 한국경제' 연재는 오늘이 마지막 회다. 그동안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소설가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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