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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이사람] 박칼린

"공연엔 용서가 없다"는 말
가슴에 박고 사는 여자
불쑥 풀어놓은 '일기장'

책을 편다. 목차가 나온다. 그 다음은 서문 혹은 '들어가며'다. 책을 읽을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동차 운전으로 치면 '예열' 같은 거다. 그래야 독자가 책을 볼 엄두를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걸 거치고 나면 비로소 본문이 시작된다. 그 본문은 또 몇 개의 단락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각의 단락은 나름의 완결성과 연결 고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섹션으로 구분한 의미가 있으니.

근데 이 책 그런 거 없다. 목차 다음 곧바로 본문이다. '내가 어디 빼 먹었나' 싶었다. 아니었다. 설명 예고 안내 그런 거 없이 불쑥 책 안으로 독자를 끌고 갔다.

본문도 그랬다. 책은 4개의 단락으로 구별된다. 왜 그렇게 나누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은이는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43)이다.



이 이국적인 여인네가 쓴 자전적 이야기라면 당연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유년기 그 방황을 견디며 뮤지컬과 만난 청소년기 한국에 들어와 '명성황후'를 하며 죽도록 고생한 230대 시절 등등이 차례대로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이토록 뒤죽박죽이라니. 그리곤 시치미 뚝 떼고 제목 '그냥' 이란다.

우리의 '칼린 샘'은 정말 그러고 싶었던 모양이다. 목에 잔뜩 힘주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너희들이 나를 뭘 알아'라며 폼 잡기 보다 그저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수다 떨듯 속삭이듯 고백하듯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리투아니아에서 서울을 지나 시드니로 공간을 가로지르고 시간을 오가며 테마를 갈아탄다. 그가 그토록 좋아한다는 '무작정 여행'처럼 책 역시 그의 머리 속을 자유롭게 비행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다 읽고 나면 몇가지 풍경이 겹쳐진다. 박칼린에게 설겆이가 왜 중요한지 "공연엔 용서가 없다"란 말을 왜 가슴에 박고 사는지 송일곤.장준환 감독이 왜 그와 절친이 되었는지 등등. 거기엔 때론 대책없을 만큼 엉뚱하지만 무대와 마주하는 순간엔 결코 양보하지 않는 외곬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엄한 '칼린 샘'의 부릅 뜬 두 눈이 아닌 몰래 일기장을 훔쳐본 것처럼 그의 속내를 엿본 것 같아 반갑고 친근했다. 문득 그가 뮤지컬 지휘을 마치고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어떤 모습으로 인사할지 궁금해졌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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