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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조각난 엄지 발톱

이정화

앞집에 사는 애나는 여든이 넘었지만 정정하다. 훤칠한 키에 어깨가 듬직한 그녀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성장을 하고 집을 나설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스스로 운전해서 주중에는 자신이 세놓는 건물을 돌아본 후 미장원에 들리고, 주말에는 LA에 있는 우크라이나인 교회에 가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올만큼 기력이 좋다.

애나는 집 관리도 잘 한다. 아침마다 연 노랑 가발을 단정히 쓰고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화단과 잔디에 물을 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몇 년 전 남편이 죽은 후에도 그녀의 집은 동네의 어느 집보다도 손질이 잘 되어있다. 장성한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가까이 살아 수시로 들려 손보아주는 탓도 있을 것이다.

오후가 되면 그녀는 길 쪽으로 난 차고 문을 열어놓고, 키우는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앉아 동네 모습을 즐긴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손을 흔들고 그들이 걸음을 멈추면 사람들을 방처럼 꾸민 그녀의 차고에 맞아들여 잡담을 나누곤 한다. 애나는 이 동네가 개발될 때부터 살아왔다.

애나가 동네 터줏대감이라면 나는 여러 면에서 그 반대였다. 이 집의 두 번째 주인인 나는 집에 제대로 붙어 있은 적이 없었다. 주 5일은 남편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봉사일로 바빴다.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엔 어두워서야 들어왔다. 집과 마당을 돌보거나 동네사람과 한가롭게 잡담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이웃의 이름도 몰랐고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집에 들어앉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다가 몸이 좀 회복되자 가벼운 운동을 하기위해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오후에 집을 나서면 자주 애나와 얼굴을 마주쳤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그녀와 동양인인 나는 나이 차이가 있을 뿐더러 공통된 화제도 없을 것 같아 인사만 하고 지나가곤 했다. 어차피 그녀의 영어는 동구라파 액센트가 강해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자주 만나면서 차츰 나도 애나의 차고에 들리게 되었다. 하루는 건성피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녀의 다리 피부가 요즘 가렵고 발바닥도 굳은살이 박여 트기도 하고 스타킹을 신으면 잘 찢어진다고 했다. 나도 가을부터 시작해 겨울 동안은 다리가 가려워 잠이 깨기도 하고 잠결에 긁어 피가 나 있을 때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A로션을 저녁마다 발랐더니 그런 증상이 없어지더라고 내 비결을 일러주니 그녀의 눈이 반짝하며 “그래? 어디서 그걸 살 수 있어?”하고 물었다. “아무 약국이나 마켓에서도 살 수 있어요. 올리브색 뚜껑이 있는 것을 사세요"했더니 그녀는 “나도 그걸 써봐야겠네. 여러 가지 발라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는데”하며 양말을 벗어 비늘처럼 트실 거리는 다리와 갈라진 발뒤꿈치를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의 발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던 나는 그녀의 잘 다듬어진 발톱을 주의 깊게 드려다 보았다. 엄지발톱이 예쁘다는 내 말에 애나는 빙긋 웃으며 “고마워. 하지만 그건 가짜야. 아크릴릭 발톱이지”했다. 내가 신기해하자 그녀는 “진짜 발톱은 갈라져서 보기 흉해. 어릴 때 맨발로 다니다가 돌에 부딪쳐 찢어졌어”했다. 내가 “얼마나 아팠을까! 신을 신고 다니시지”라고 하자 그녀는 신을 살 돈이 없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점령당했을 때라 양식을 뺐기고 먹을 것도 없었는 걸.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고당하고 오빠들은 소련군대에 징집됐어. 어머니는 막내를 낳고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가 없어 내가 14살 때부터 공장에 가서 일했지. 근로카드가 있어야 식량 배급을 받을 수 있었거든. 배급 줄은 왜 항상 그렇게 길었던지…. 배가 고파서 더 그래 보였는지.”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부모님이 겪었던 일과 너무 흡사했다. 독립운동에 연루되었다고 아버지와 큰오빠가 감옥에 가고 재산은 박탈당하고 밥 먹는 수저까지 빼앗겼다는 얘기를 하며 우리는 두 가족의 닮은 운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4살이면 애기나 마찬가지 나이인데…"하는 내 말에 그녀는 먼 곳을 응시하며 “난 애기처럼 응석부린 기억이 없어. 어릴 때부터 몸집이 크고 어른스러웠나 봐. 소련군의 강간을 피하려고 15살에 결혼해서 독일로 도망갔지. 난민수용소에선 헌 고무덧신을 얻어 신고 농장에 불려가서 일하곤 했어. 안 해본 일이 없고 온갖 험한 꼴을 다 보았다오”했다.

그녀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남편과 65년을 함께 살면서도 무슨 마음이었는지 내 엄지발가락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니까”하며 털털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신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그녀 앞에 맨발이 놓여졌다. 자라서 처음으로 환한 곳에 내 발을 드러내었다.

“저도 평생 아무에게도 발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오! 너도 신이 없어 맨발로 다닌 거야?”

“신을 아끼느라 봄, 여름엔 맨발로 다니긴 했지요. 하지만 내 발톱은 갓 태어났을 을 때 발가락을 비비며 울어서 그렇게 되었다더군요. 어머니가 제가 아들이 아니라고 실망해서 울게 내버려 두었대요. 한국 속담 ‘발가락 하나가 병신이라도 병신은 병신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저를 두고 하는 것 같아 흠칫했어요. 그래서 발을 항상 숨겼어요.”

이 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애나가 손을 들어 내 등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내가 짊어진 숨기고 산 세월을 다 쓸어버리려는 듯 그녀는 내 등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들의 엄지발톱이 오른쪽 것은 두 쪽이 나고, 왼쪽 것은 비뚤어져 뭉그러진 것 까지 똑 같다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그날 서로를 꼭 껴안아주고 헤어졌다. 그 후로 애나와 나는 만날 때 마다 턱없이 반가워한다. 이 넓은 세상에 둘도 없을 엄지발가락 짝꿍을 찾았으니까.


<약력>
'문학저널' 소설부문 신인상
오렌지글사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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