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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찾아서] 철학이 있는 여행

17일간 함께 달린 아버지와 아들, 깨달음은 길 위에 있었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여행소설이면서 동시에 철학소설이다. 한 아버지와 11살짜리 아들이 주인공이다. 미국의 중북부 지방에서 서부 태평양 연안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린 17일 간의 실제 여행을 바탕으로 했다. 부자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와 침묵, 그 틈에서 발생하는 사유와 성찰이 소설의 줄기를 이룬다.

제목에 나오는 ‘선(禪)’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선이란 무엇인가. 무위의 깨달음이다. 저자인 미국인 로버트 M. 피어시그가 동양의 선을 이야기하는 맥락이 흥미롭다. 한때 재능 있는 과학자였던 그가 선을 접한 곳은 한국이었다고 한다. 미군정 하의 한국에서 군 생활을 거친 뒤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철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인도의 베나레스 힌두 대학교에 유학해 동양철학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소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1974년 처음 출간됐다. 이후 23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독자의 관심을 받는 대형 스테디셀러다. 이 책에는 아들과 아버지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스쳐간 실제의 미국 지명 말고도 저자 자신이 수행해온 지적 여정 또한 빼곡하게 담겨있다. 내용 뿐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형식도 독특하다. 서로 배치되는 듯한 두 요소를 한 그릇에 담아낸 서사구조는 특히 매력적이다. 모터사이클의 빠른 속도를 사유의 느린 걸음이 보완하고, 변해가는 서정적인 풍광은 물질현상에 대한 사색과 궁합이 맞는다.

소설이 탄생한 시대가 히피 운동이 유행하던 시기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피는 자본주의의 물질 숭배를 혐오했다. 그러나 히피의 아버지 세대는 생존의 수단인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물질을 추구했던 아버지 세대와 물질을 혐오하는 히피 세대 간의 충돌에서 저자는 제3의 대안을 찾고자 한다. 물질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매몰되지도 않는 삶의 방식,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이야기양식인 소설과 사유방식인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저자가 부단하게 던지고 또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제3의 대안, 곧 선의 구체적 사례로 한국의 옛 성벽을 곳곳에서 거론하는 대목은 놓쳐선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 보았던 성벽은 기술 공학적 행위의 산물이었다. 아름다웠지만, 이는 노련한 지적 기획 때문도 아니었고, 작업에 대한 과학적 관리 때문도 아니었으며, 그 성벽을 ‘멋들어지게’ 하기 위해서 과외로 지출한 경비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그 성벽을 쌓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독특한 방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초월의 상태에서 그 일을 제대로 하도록 자신들을 유도하는 방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516쪽)

성벽을 쌓던 한국 인부들의 태도는 모터사이클을 관리하는 기술과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과학기술문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오늘날 삶의 자세로 이어진다. 돌을 공들여 쌓아나간 그 자연스러운 정교함을 보며 저자는 물질적 욕망만으로는 설명해낼 수 없는 초월의 영역을 깨닫는다.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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