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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 향수 달래드리고 싶다"

데뷔 25주년 뉴욕 공연 주현미씨
26일 오후 8시 대동연회장 그랜드볼룸서
"트로트는 희로애락 전달할 수 있어 매력"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동네 약국에서 흰 가운 차림에 상냥한 목소리로 소화제와 감기약을 지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1985년 제5공화국의 암흑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술에 젖어 눈물에 젖어 ‘비 내리는 영동교’에 흠뻑 빠져버렸다.

상큼한 숏커트로 신선하게 데뷔한 주현미씨는 ‘신사동 그 사람’‘잠깐만’‘또 만났네’에서 ‘짜라자짜’까지 잇달아 히트곡을 내며 ‘트로트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올해가 공식 가요계 데뷔 25주년을 맞지만,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 MBC-TV 이미자 모창대회에 출연한 것부터 시작하면, 그의 연예계 데뷔는 40주년인 셈이다.

주씨는 올해 처음 제정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자로도 선정됐다. 오는 26일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본사 주최로 콘서트를 여는 주씨와 e-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가수 데뷔 25주년, 뉴욕에서 콘서트를 여는 소감은.

“올해가 가기 전 뉴욕에서 한인분들과 함께 나 자신에게도 매우 뜻 깊은 공연을 할 수 있게 돼 영광이며 감회가 새롭다.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뉴욕 콘서트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이제까지 뉴욕에서 크고 작은 콘서트를 7∼8회 열었다. 해외 공연에선 동포분들이 오랜만에 만난 진짜 가족처럼 진심으로 반겨주셨다. 내 노래 소절마다 마음을 다해 함께 불러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그저 감사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감정에 북받치실 땐 내가 오히려 감동한다. 내 노래로 고국의 향수를 달래시는 모습과 함께 위로와 즐거움을 드린 것 같아 보람을 느끼게 된다. ”

-이민자들과 화교 출신인 가수로서 공감대가 있다면.

“화교 출신으로 자란 환경 탓에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자연스레 살아왔다. 이민자분들, 특히 어릴 때부터 이민 가서 자란 분들과의 삶과 거의 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비슷한 연배 이민자 분들과는 어떤 대화 노래로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 한다.”

-어릴 적 중국계라고 놀림 받았나.

“중국혈통으로 화교학교를 다닌 탓에 학교에서는 중국말을 하고 평상 시에는 우리말을 해 친구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자주 외톨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사회성 없는 성격이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좋아한 노래는.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를 즐겨 불렀다. 그 덕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 MBC가 주최한 ‘이미자 노래 부르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었다.”

-약사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작곡가 정종택 선생님을 알게 됐는데, 그 분이 내가 대학 졸업 후 약사가 됐을 때 옛날 기억을 갖고 약국에 직접 찾아 오셨다. 그 분 덕분에 음반을 취입하게 됐다.”

-트로트 장르의 매력은.

“그야말로 우리 국민들의 희로애락을 노래로 풍부하게 전달하고 전달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임동신씨)을 어떻게 만났나. 음악인 출신 남편의 장점과 단점은.

“1985년 함께 LA로 공연을 떠났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됐다. 남편의 장점이라면 요모조모로 저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특히 음악 선곡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상당수 곡의 소절 흐름까지 서로 상의한다. 지금도 대화의 절반 이상이 음악에 관한 것이다. 단점이라면 남편은 록을 했던 음악인이어서 솔직히 음악적으로 통하는 건 아니란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가요상 시상식에서 ‘여보’라고 했는데.

“남편이 결혼하면서 자기 일을 접고 제 매니지먼트와 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같이 음악을 하던 사람인데 나 혼자 무대 위 영광을 누리게 돼 미안했다. 마음 속으로 ‘이 상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인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잉꼬부부, 현모양처로 소문나 있다. 가수 활동하면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어떻게 조율했나.

“현모양처라고 하면 남편, 아이들이 화낼 테니까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한 집의 안주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일들은 빼놓지 않고 하는 편이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하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직접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언젠가 ‘보통 때는 평범한 가정주부지만 무대에 섰을 때만큼은 연예인이니, 그 순간은 최고가 돼라’고 남편이 해준 한마디다. 지금도 그 말을 좌우명이자 철칙으로 삼고 있다. 꼭 대단한 욕심을 갖는 것만이 훌륭한 음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팬들에게는 언제까지나 최고의 모습으로 남고 싶다.”

-노래는 인간 주현미에게 무엇인가.

“노래는 내게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까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렇게 노래가 내게 준 것이 상당히 많지만, 노래 때문에 치러야 했던 대가도 혹독했다. 지금도 공연을 앞두고는 며칠씩 잠을 못 잘 정도다. 그런 걸 잘 아는 가족은 내가 무대에 설 때마다 ‘떨려서 못 보겠다’고 다들 도망가기도 한다.”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주현미의 모습은.

“노래하기를 좋아했을 뿐 꿈은 아니었고, 설령 포부가 있다 하더라고 나서서 도전하는 외향성은 없었다. 아마도 약사로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공연 일시: 11월 26일(금) 오후 8시 ▶장소: 대동연회장 그랜드볼룸 ▶특별후원: 아시아나항공 ▶티켓:$80·$100·$120 …문의: 718-361-7700(교환번호 150)

★‘트로트의 여왕’ 주현미는

본명이 ‘저우 쉬엔 메이(周炫美)’. 1961년 광주에서 한의사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화교학교를 다녔고,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다님. 1981년 강변가요제에 ‘인삼뿌리’ 팀으로 참가 장려상 수상. 중구 필동에서 한울약국을 경영하다 1984년 트로트 메들리 ‘쌍쌍 파티’ 취입, 1985년 ‘비 내리는 영동교’로 공식 데뷔. 그해 KBS, MBC 여자신인가수상 석권. 86년 MBC 10대 가수상, 87년 KBS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수상 등 수상. 히트곡으로 ‘눈물의 블루스’’내 마음 별과 같이‘‘신사동 그 사람’’잠깐만‘‘또 만났네요’’짜라자짜‘‘청풍명월’ 등이 있다. 88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씨와 결혼, 1남(준혁) 1녀(수연)을 두었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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