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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안전선을 뛰어넘어

권태산 목사/라크라센타 하나님의 꿈의 교회

교회 행사에 사람 한 명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만들어낸 대안이 가정으로 초청을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오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든 것일까? 영적인 문제로만 해석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동안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때문에 직장에서의 회식이나 모임을 등한시 해온 것이 사실이다. 예수 믿고는 세상의 친구들 그리고 세상습관도 정리가 되어가면서 사내 회식 같은 술자리는 정말로 참석하기 괴로운 행사가 되어버렸다. 주일은 절대로 양 보할 수 없는 날로 외부의 그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게되면서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진 내가 초청하는 교회 행사에 사람들이 올 리 만무하다.

인간은 유혹에도 약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생각의 기복 또한 심한 편이라 신학과 교리라는 안전선을 그어 놓고 사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어 놓은 선 안에서만 움직이다 보면 편하기도 하고 안정감도 생기지만 이웃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삶은 아니다.

그동안 교회가 그어 놓은 안전선들이 때로 성경의 권위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주일 성수라는 확고한 안전선 때문에 우리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회사 전체 야유회도 빠져서 동료의 빈축을 샀다. 주일 성수를 못하면 한주간이 괴로울 정도로 믿음이 성숙했으면 전도의 목적으로 야유회는 참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회식자리에서 상사의 술잔을 받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많은 논쟁이 있다. 진리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한잔 술에 대단한 의미를 담는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 예수쟁이이지만 여러분을 위해 마신다며 한잔 받아준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술을 마시다니 예수쟁이나 나나 똑같은 놈이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이 술 한 잔을 마신 것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의 나의 삶을 함께 버무려 비판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어놓은 안전선을 뛰어넘을 때가 왔다. 어쩌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이유도 늘 안전선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안전선을 뛰어넘다 상처가 나고 넘어진 동료를 격려하고 치료하다 보면 싸울 여유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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