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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축복하러 오신 예수님

신홍식 루카/성 정하상 바오로 주임신부

낙엽 타는 내가 깊은 산중에 숨겨놓은 시심을 깨웁니다. 황금빛 들녘을 휘돌고 대나무 숲을 지나 나를 이끌고 가던 바람이 멈춘 곳은 아무도 모르는 샘 가 단풍 나무 아래입니다. 빨갛다가 벌써 떨어져 뒹구는 낙엽은 그 끝이라도 좋은 차라리 기쁨입니다. 방금 보고 온 들판의 풍요로운 결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또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니 이 가을에 예감하는 인생의 끝이 덧없음에 근심이 아니기를 그 풍성한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의 정을 북돋웁니다. 축복에 대한 감사의 본보기를 성경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성경의 나병 치유 이야기는 축복과 감사의 뜻을 잘 설명하고 있지 싶습니다. 그 치료 방법을 모르던 시절에 나병은 병의 증세가 하도 흉하여 보는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그 전염성이 또한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나병은 죽을 죄를 지은 이들에게 내려지는 저주의 표지였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의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잘 드러내고, 그 축복을 입은 이들이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의미를 잘 깨닫게 해 주지 싶습니다.

열왕기 하권 5장은 나병에 걸렸던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 예언자의 조언대로 요르단 강물에 내려가 그저 일곱 번 몸을 씻고 나서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전해줍니다. 루카 복음 17장의 열명의 나병환자 치유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단순하게 “물로 씻으라”는 엘리사의 조언이나 그저 “사제에게 보이라”는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실망스러울 만큼 단순한 처방이었습니다. 그 자체는 도무지 효과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신 것 외에 다른 어떤 이유가 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축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참 신앙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하고 물으십니다. 열왕기 하권 5장에서 나아만이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거론된 “감사와 찬양, 그리고 선물 증정”은 단순히 예의 바른 행동하기 정도가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만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또 다른 한 형태입니다. 물론 감사와 찬미를 드리러 다시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도 믿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믿음이란 그저 운수가 좋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참다운 구원은 베푸신 축복에 대한 합당한 감사의 만남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은 권위가 있어서 우리가 믿을 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뒤따를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가르침의 뜻대로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 중에도 심지어 성직자라는 사람들 중에도 빈 말만 요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마저도 제 멋대로 가공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예수님의 모범은 숭고할 뿐만 아니라 그 제자다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하시러 세상에 오셨고, 축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면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십자가의 제사를 통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축복과 감사의 만남을 성찬의 식탁에서 절묘하게 조화시키시고 그 모범을 보이신 대로 우리가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받아 드시고, 축복하시고, 쪼개시고, 나누시고….” 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감사로 만끽하시고, 구원의 희망으로 자칫 끝이라서 느끼게 되는 덧없음의 근심을 바람에 날려 버리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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