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한국경제] 김기창 '복덕방', 1900년대 땅투기·사기 빈번하자 감시자 역할
30여년전 동네 어귀에 복덕방 간판
'부동산 광풍'에 밀려 역사 속으로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여러 집을 보여줬는데도 마음에 드는 집이 없다고 그냥 가면, 헛품 팔았다고 입맛을 다시며 복덕방 앞 의자에 힘없이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보여준 집이나 방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함께 사무실로 와서 계약서를 꺼내며 흥정을 시작 했다.
많은 이들은 '복덕방 할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얼마 동안까지는 '집주름'이라고 불렀다. '집에 대한 흥정을 붙여 주고 보수를 받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복덕방(福德房)이라는 단어는 생기복덕(生氣福德, 복과 덕을 가져다 주는 곳)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복덕방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1905년이다. "미동에서 복덕방을 하는 집주름이 조규칠 씨 집문서를 분실하였기에 이를 휴지로 친다."라는 6월 24일자 '황성신문' 광고에서다.
일제강점기 때의 복덕방 풍경은 이태준이 193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복덕방'에 잘 나타나 있다.
복덕방 주인은 구한말에 훈련원의 참위로 봉직했던 서 참위다. 안 초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사업 실패로 몰락하여 서 참위의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무용가로 유명한 딸이 있으나, 딸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재기하려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
박 영감은 훈련원 시절 서 참위의 친구이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를 빌미로 대서업을 한다고 일어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는 재기를 꿈꾸던 안 초시에게 부동산 투자에 관한 정보를 일러 준다. 안 초시는 딸이 마련해 준 돈을 몽땅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새로운 항구의 건설이라든가, 땅 값이 오른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박 영감에게 정보를 전해 준 사람이 자신의 땅을 처분하기 위해 사기극을 벌인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충격을 받은 안 초시는 음독자살을 한다.
이 소설은 당시 노인들의 삶의 모습뿐 아니라, 그때에도 땅에 대한 투기와 사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복덕방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기에, 이렇게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1939년 5월 3일자 '매일신보'에 보면 '복덕방에서 집값이나 집세에 대해 농간을 피워서 감시를 철저히 하려고 한다.'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때 복덕방 '복비'는 어느 정도였을까? 1899년 5월 23일자 '독립신문'에 의하면 "백 냥 머리에 일냥"이라고 했으니, 거래가격의 1 퍼센트다. 그러나 '독립신문'은 "집주름들이 양쪽에서 5,6냥씩을 받아 모두 열 냥 이상을 챙기고, 한성부에 가서 집문서의 이름을 바꿔주는 일을 대행해주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또 다시 5, 6냥씩을 챙기고 있다."라면서 집주름의 악습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에서 5,6냥은 백 냥에 대한 계산이라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집주름'은 '가쾌'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의 문인 유만주(1755∼1788)가 13년 동안 쓴 일기책인 <흠영> 에 보면 "집주름(가쾌)을 데리고서 공동(公洞)에 있는 집을 봤는데 여섯 가지의 단점이 있었다. 한양 사대부의 집 중에서 제일 값이 많이 나가는 것이 입동에 있는 이은의 집인데, 그 규모가 무릇 380여 칸이고, 집값이 상평통보로 환산하면 2만여 냥쯤 된다고 했다." (안대회 번역)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29년(1753) 7월 5일자 에 보면 “윤성동은 집주름 노릇을 생업으로 삼았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집주름'이 존재했음이 국가와 개인의 기록으로 확인된다.
일부 자료에는 '고려시대에 객주가 부동산을 중개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라면서, 집주름이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하게 어느 문헌이라고 밝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집 거래를 알선했던 '집주름'은 아파트 건설과 함께 불어 닥친 '부동산 광풍'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집값이나 땅값이 도포자락 휘날리면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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