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30대 돌풍' 한인들] "Yes, I can" 도전정신…미 선거 새 페러다임 열었다
■제인 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한번 실패 경험이 승리의 원동력
"다른 커뮤니티들과 소통에 주력"
현역 시의원이 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선거에서 빠진 샌프란시스코 6지구에선 제인 김을 비롯해 14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한 후보의 득표율이 50%를 넘을 때까지 1순위, 2순위, 3순위 선택을 차례로 집계하는 샌프란시스코 선거규정에 따라 8일이 되서야 제인 김은 시의원 당선이 확정됐다.
"15분 밖에 시간이 안나요."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 제인 김과의 전화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당선 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낮 시간은 주로 '교육위원 미팅중' '회의 참석중'이라는 문자 메세지가 돌아왔다. 15분씩 여러 번 짧막한 통화와 문자,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 선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바쁜 것 같다.
"내년 1월8일 시의원으로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교육위원회 의장으로서 활동이 계속 있다. 다행히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데 익숙하다."
뉴욕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제인 김은 4억3000만 달러의 예산을 관장하는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 의장이다. 2006년 최연소(당시 29살), 최다 득표로 시 교육위원에 당선됐다. 무난한 당선은 아니었다. 2004년 27살 나이에 도전한 교육위원 선거에서 이미 한 차례 낙선을 경험했다.
- 처음 교육위원 선거에서는 당선되지 못했다. 또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었나.
"당시는 선거 경험이 없었다.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실패를 많이 한다. 그 때도 실망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도전을 즐긴다. 결국 2년 뒤 다시 도전해 당선됐고 그 때의 경험이 이번 선거 승리의 기반이 됐다."
- 이번 선거에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민주당, 노조, 진보단체, 상공회의소 등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내가 교육위원으로서 독립적으로 활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뛰었다. 발로 뛰면서 유권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났다."
제인 김이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선거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4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20~30대가 주를 이룬 자원봉사자들은 선거구 내 유권자들의 성별, 연령별 정치성향을 정밀 분석해 선거전략을 세우고 한 명, 한 명을 만나며 풀뿌리 선거운동을 펼쳤다.
한인 2세 네트워크도 가동됐다. 2009년 보스턴 시장에 도전했던 샘 윤, 뉴욕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케빈 김, PJ 김 등이 후원행사를 개최하며 제인 김을 도왔다.
선거 홈페이지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3종세트가 나란히 제인 김의 열정과 활기를 전달했다.
지역 언론들도 제인 김의 선거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주간지 SF위클리는 제인 김을 '젊고, 똑똑하고, 매력적이며 말을 잘한다. 더구나 아시아계다'라고 평했다. SF위클리는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계'라는 정체성 카드가 제인 김을 시의원에 당선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 아시아계 정치인에 대한 편견이나 한계는 못느꼈나.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리더십이 부족하고 소극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계가 강하다. 아시아계를 존경(respect)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인이라는 것, 아시아계라는 점은 나에게 있어 한계(limitation)가 아니고 자산(asset)이다."
- 지역구에는 한인 유권자가 많지 않다.
"한인 유권자는 200여명에 불과하다. 한인 유권자는 중요하다. 하지만 한인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오랜기간 지역에서 봉사하면서 타 커뮤니티와도 연합(coalition)을 맺었다. 샌프란시스코 내의 중국계 커뮤니티 뿐 아니라 필리핀, 라티노, 베트남, 흑인 등 다른 소수계 커뮤니티와 동일한 관심사를 찾는데 주력했다. 함께 가자고 했다. 소통이 중요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적 파워가 커지고 있는 중국계는 특히 제인 김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중국계는 정치 지도자들은 '나를 지원하는 중국계는 이번 선거에서 제인 김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제인 김은 2000년 차이나타운 지역개발 센터(CCDC)의 청소년 담당으로 활동하며 중국계와 네트워크를 쌓았다.
- 미국에 사는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봤나.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뉴욕은 한인이 많지 않았다. 유대인, 이탈리안 등 다양한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중요성을 배웠다. 아버지는 늘 한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하셨다. 태권도를 배워 검은 띠를 받았고 연세대에서 한국사와 외교문제도 강의를 들었다. 한국도 8번 정도 방문해 이제는 고향같다."
에피소드 #1
UC버클리 법대를 졸업한 제인 김은 지난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할아버지 김종수 서울지검 검사장, 아버지 김광호 뉴욕 퀸즈 검찰청 검사에 이어 3대 법조인이 됐다. 가족은 제인이 연봉 25만 달러를 제시한 대형로펌을 갈 줄 알았다고 한다. 제인 김은 대신 민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아버지 김광호씨는 "가훈이 '수신제가 인류복지'(치국평천하 대신)다. 가훈을 따라서인지 딸이 어렸을 때 부터 지역 봉사활동과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에피소드 #2
독특한 선거 전략도 제인 김의 승리요인이다.
제인 김은 길거리를 걸으며 단순히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대신 눈에 잘보이는 빨간색으로 칠한 '리스닝 부스'(Listening Booth)를 운영했다.
제인 김의 선거 홍보책임자인 서니 앵글로씨는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제인 김의 선거 메세지를 반영할 수 있는 홍보수단이 필요했다. 독특하고 대담한 방법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리스닝 부스는 스누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만화 '피너츠(Peanuts)'에 여자 주인공 '루시'가 찰리 브라운의 고민을 상담했던 '부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제인 김의 야외 오피스를 상징했다. 제인 김은 1시간 정도를 '리스닝 부스'에서 근무하며 유권자들과 소통했다.
에피소드 #3
스탠포드대서 정치학과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학을 전공한 제인 김은 재학중 아시안-아메리칸 학생회 회장도 역임했다. 당연히 한인 학생들을 많이 알 것 같았다. 권율 연방통신위원회(FCC) 부국장이 1년 선배며 친하게 지냈다는 답이 나왔다. 최근 학력위조 논란이 됐던 '타블로'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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