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시 독립문' 의미는…조국 독립 피땀 흘린 '이민 1세 발자취' 담았다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 앞장
한인이민자 자료 전시 계획도
이민 초창기 1세대 대부분이 1940~50년에 사망한 상황에서 이들의 발자취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세워지기까지 미주한인 이민자들의 희생을 간과할 수 없다.
차만재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 회장은 “고종의 이민장려 정책으로 많은 한인들이 이민 왔지만 일본통치로 무국적자가 됐다. 갖가지 모욕과 인종 차별 속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나라를 잃자 한인들은 리들리시 및 다뉴바시의 과일농장 노동자로 하루 50센트 임금을 받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다”라고 초기 이민자들의 숭고한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독립문 이면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땀을 흘린 이민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과 노고가 들어있는 것이다.
독립문 및 애국지사 기념비 제작에는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앞장섰다. 한인 후세들에게 이민선조의 역사를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 2003년 조직된 연구회는 그동안 이민사 보관 및 기록, 유적지 발굴·보전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다뉴바시 애국선조 애국활동 기념비 건립,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묵었던 버지스 호텔 기념동판 설치, 리들리시 박물관 한인이민사 자료 전시 등을 이끌었다. 리들리시 박물관에는 1903년 고종이 애국지사 이재수 선생에게 발부한 여권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는 향후 리들리시 지원으로 독립문 뒷쪽 수영장을 박물관으로 전환해 한인이민사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다. 또한 1938년 선조들이 손으로 세운 리들리한인장로교회 재구입을 위해 기금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정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는 “리들리시 독립문 및 애국지사 10인 기념비가 한인이민사의 정신적인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많은 한인들이 이곳을 방문해 한인 이민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은영 기자 eyou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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