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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영 시인의 여로] 화이트 마운틴, 천국행 기차 탄 듯…'느림의 미학' 속으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그러나 화이트 마운틴에는 기차가 산으로 간다. 왜 기차가 산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Sylvester Marsh라는 사람은 기차가 산으로 가게 하기 위하여 Cog Railway(톱니바퀴 철로)를 개발해 특허를 받은 사람이다.

양곡 도매상과 통조림 공장으로 돈을 벌어 사람들에게 동화 속의 주인공들이 되어보라고 이 험한 산에다 기찻길을 낸 사람. 그는 당대에도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기도 하고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왜 산에다 기찻길을 낸단 말인가? 석탄이나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기찻길 중앙에 톱니바퀴가 굴러가도록 톱니 궤도가 있고 양 옆에는 균형을 잡으며 바퀴가 굴러가도록 일반 기차 레일을 깔아 놓았다. 그 육중한 기관실과 100여명의 승객이 타고 오를 수 있는 동력은 그렇다 치고 톱니바퀴의 톱니 강도가 얼마나 강하면 이런 하중을 이겨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Sylvester Marsh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 고집대로 산에다 기찻길을 냈고 우리는 지금 그 기차를 타보려고 워싱턴에서부터 왔다. 가이드는 3시에 타겠다고 예약까지 해놓고…. 인간이 얼마나 영리한 동물인가! 그런데 시간과 돈을 들여 산에다 기찻길을 내는 사람이 있고 그 기차를 타보겠다고 오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교환 가치로 볼 때는 제로가 아니라 완전 손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손실과 상관없이 즐거워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의 삶이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Sylvester Marsh는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계산적으로만 살지 말고 일탈된 삶도 살아보라고 이런 장치를 해놓았을 것이다. 현실에 안 맞는 이 엉뚱함으로 인해 우리를 옥죄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다. 소가 끄는 달구지 소리를 내며 산으로 올라가는 톱니바퀴 기차…. 속도와 대량생산을 위해 바쁘게만 몰아치는 일상을 비웃듯 한 없이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는 기차.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든 계산에서 벗어난 어린 아이가 되었다.

하늘에서 천병(天兵)들이 뛰어내려 소리 지르며 내달릴 것 같은 장엄한 둔덕이 눈앞을 가로막는 옆으로 기차가 오른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기차처럼…. 시골길에 달구지가 덜거덕거리며 가듯이 산으로 오르는 톱니바퀴 기차. 철길 가에는 고산 식물이 바람과 변화무쌍한 기후를 견디지 못해 땅으로 주저앉아 자연 분재(盆栽)가 되어 있다.

마침 안개가 끼어 전방의 시야가 막히고 철로는 하늘을 향하고 있으니 틀림없는 천국행 기차가 되었다. 살아서 천국을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사는 것이 팍팍하고 힘들 때 천국을 한 번씩 갔다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게 안 되니…. 하느님은 참 매정도 하시지….

석탄을 때 증기의 힘으로 동력을 얻는 기관실이 뒤에서 객차를 밀고 오르는 기차. 산으로 오르는 기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동심이 되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손동작이나 몸 움직임이 유난히 큰 제스처로 기차를 소개하는 승무원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색적인 풍경들로 인해 자기가 있던 현실과 격리되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지만 이렇게 완전히 익숙했던 환경에서 단절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이 아니라 다른 별나라에 온 듯한 풍경 속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으니.

안개가 잔뜩 낀 산 능선에 가끔씩 등산객이 보이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손을 흔든다. 기차는 바윗돌들 위를 가기도 하고 계곡 위에 놓은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이제 다 왔으려니 하면 또 가고 어디에선가 멈추면 이제 다 왔구나!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기차와 서로 비켜가느라 멈추는 시간이다. 왕복 복선으로 철로를 깔지 않고 (하기야 바쁠 일도 없는 사람들인데) 단선으로 깔린 철길 중간에 서로 교차하도록 시설을 해놓았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지고 안개가 더 짙어진다. 40분 이상이나 오른 후에 레일의 끝점에 도달. 출발역과 종착역만 있는 산행 기찻길. 기차가 멈춘 정상에는 현대식 건물이 서있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떨면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리가 내린 기차 칸으로 서둘러 올라간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에겐 한 시간 가량 주변 경관을 감상하라고 자유 시간이 주어졌지만 2~3미터의 전방도 보이지 않으니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산 밑의 기온과 너무나 차이가 나 밖에 있을 수도 없다. 모두 반팔 옷을 입었던 사람들이 어느 틈에 긴 팔 옷으로 바꿔 입었지만 그래도 추위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물 안에 있는 옷 가게에서 옷을 더 사 입었다.

남대문 옷 가게보다 옷이 더 잘 팔리는 산, 산에서 옷 장사가 잘 된다고?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은 실내에 써 놓은 글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기후가 가장 나쁜 곳이라고 씌어져 있으니….

화이트 마운틴을 가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겨울 옷을 준비하시라! 비록 여름이라 할지라도.

갑자기 변한 기후에 몸을 웅크리고 떨던 사람들이 옷을 사 입고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자 얼굴에 다시 생기가 난다. 레스토랑도 있고 찻집도 있어 제법 낭만적인 분위기를 잡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정상에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 그 기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톱니바퀴 기차가 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이트 마운틴 만큼 장엄한 풍광을 가진 곳은 없을 것 같다. 마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기도 한 시간들.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던 템포, 그런 세상에 왔다가 이제 빠르기 모드로 바뀌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에 빠져 본 시간들은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그 느림의 시간들에 대한 가치를….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진다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은 없지 않을까.

TOP여행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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