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영 시인의 여로] 하늘 호수 '모홍크'…나도 하늘 사람
산 정상에 연못이 있는 산은 우리나라에도 한라산과 백두산이 있어 그렇게 낯 선 것만은 아니다. 한라산에 있는 연못은 백록담이요 백두산에 있는 것은 천지. 백록담, 흰 사슴들이 와 물을 먹는 연못이라니 그 이름이 얼마나 고아하고 아름다운가. 하얀 사슴들이 뛰어 놀다 목이 마르면 와서 물을 마시는 연못.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라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신비한 세계에 대한 동경(憧憬)을 그려 넣은 이름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으로 되어 있어 물을 찾으려면 계곡으로 가야 하겠건만 산 정상에 물이 있으니 신비롭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신성한 곳이요. 일반인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같으면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혀서 백두산은 칼데라 호수(화산이 폭발할 때 화구가 함몰하여 만들어진 호수)요 백록담은 화구호(화산이 폭발한 화구에 만들어진 호수)라 하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인지가 발달하지 않아 그저 신비의 대상이었고 그 신비를 품고 살았으니 아마도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홍크는 인디안 말로 하늘 호수라고 한다. 서정적 감정이 묻어나는 이름으로서 우리의 백록담이나 천지와 정서적으로 같다. 천지를 우리말로 바꾸면 바로 하늘 연못이니 인디언들이 가지고 있던 감성이나 우리의 조상들이 가졌던 감성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몽골리아 바이칼호에서 함께 살다가 한 부류는 빙하시대 얼음 위를 걸어 아메리카로 이동했고 한 부류는 반도로 이동했다는 말을 더 실감나게 하는 감성의 동질성, 표현의 동질성을 발견 하게 된다.
하늘 호수, 하늘 호수는 아무데서나 쉽게 발견될 수 없었기에 분명 신성시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 호수는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행할 때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의식을 행한 후에는 영혼의 정화와 심신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적 휴양지로 개발을 한 산장 주변에 인디언들이 만들어 놓았을 법한 목조 정자 모형들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다. 본래의 땅 주인들인 인디언들의 향수를 느껴보라고 해놓았을 것이다. 인디언들이 그들의 생활방식대로 평화롭게 살면서 관광객을 맞이한다면 훨씬 더 평화로움과 역사적 축적이 녹아 있어 사람들을 더 깊게 자연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무로 깎아 만든 전통적인 조각품이나 열매로 만든 목걸이, 귀고리. 팔찌 등을 인디언들이 팔고 있다면 훨씬 더 매료되고 이국적 문화에 녹아들어 친근감을 갖게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면 대형 텐트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전통 놀이를 보여준다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후손들에게 이어질 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이곳의 주인이었던 그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기루가 되어버린 종족, 하늘 호수란 이름만 남겨 놓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으니 마치 주인은 없고 객들만 오가는 것 같지 않은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종족이 하나 둘이 아니겠건만 하늘 호수란 이름을 지은 그들은 왠지 어떤 동질성을 가슴으로 전달시키며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어디선가 금방 말을 타고 나타나 하늘 사람 같은 향기를 풍기며 웃음을 던질 것 같은 환상도 떠오른다. 문명에 뒤떨어지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제 땅에서 쫓겨나고 사라져야 했던 종족, 그들은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진정 하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그들은 하늘의 사랑마저 받지 못한 것일까…. 자기 자신이 자기를 지키지 못할 때는 하늘에게서마저 버림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사색은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267개의 방이 있다는 산장은 대형 호텔 급이고 방값도 최저가 300달러라니 누구나 쉽게 하룻밤 잠자리를 청해 볼 곳은 못 된다.
산장에서 잠을 자는 것은 비싼 방값 때문에 못 자지만 낮에 즐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호수에서는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며 노는 위락 시설을 해놓아 그야말로 하루를 귀족처럼 놀아볼 수 있는 곳이다. 모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하루만이라도 근심 걱정 없이 멋있게 보낼 수 있는 곳.
하늘호수
하늘 호수에 오면 / 하늘 사람이 되어 / 향기가 난다네 // 하늘 향기 가득 / 풍기는 하늘 사람 // 하나 둘 / 셋 넷 / 늘어나면 // 하늘나라 / 하늘나라 된다네 / 하늘 사람 사는 / 하늘나라 된다네
둥근 달이 떠오르는 달밤에 누군가 호숫가에 앉아 피리라도 분다면 분명 선경이요, 하늘의 풍경화가 되지 않을까….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이미 지구는 우주에 떠서 돌고 있다고 했고 우주인들이 달에도 다녀왔으니 분명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에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저 우리는 이 하늘나라에서 하늘 사람으로서 서로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보자꾸나.….
박희진 시인의 '나의 아들은'이라는 시에는 나의 아들이란 음절이 행의 첫머리에 37번이나 계속되는 시다. 그의 아들이란 시에는 '나의 아들은 용의 생식기를 가져 지상의 여인과는 동침을 안 한다. 나의 아들은 신비의 열쇠인 북두칠성으로 다른 우주를 여닫는다. 나의 아들은 별을 꿰어 목걸이를 한다' 하는 식으로 사색의 변주가 무변광대하다.
그의 아들이란 시를 보면 한 반도에도 이렇게 사색이 깊고 웅장한 시인이 있을까 하고 경외심을 갖게 한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지연, 학연, 혈연, 나이를 따지는 그 협량의 가슴들을 단번에 터트려버리는 통쾌한 시가 바로 '나의 아들은'이다.
박희진 시인이 하늘 호수에 온다면 다시 한 번 그 통쾌하고 무변한 사색의 변주를 노래하고도 남을 풍광, 하늘 호수.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풍광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을 불가에서는 고해(苦海)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구역질나는 일이라고도 한다. 아! 권하고 싶다. 꼭 하늘 호수를 가보라고…. 그러면 우리네 인생이 고해, 구역질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온몸의 세포 속속들이 파고들어 속세에 찌든 모든 것들을 씻어가는 바람. 그 바람이 하늘 호수의 수면을 쓰다듬으면 잔물결이 일렁이고 그 잔물결은 건반이 되어 음악이 연주된다. 고요하게 흐르던 음조가 베토벤의 영웅이 되기도 하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되기도 한다.
베토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장소에서는 백조의 호수 음계를 하나 더 올려 연주해야 제 맛이 난다고…. 저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나무숲들이 청중이 되어 열광하는 하늘 호수 연주회….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이나 주페의 경기병의 서곡, 비발디의 사계, 로드리고의 기항지도 연주된다. 어느 틈에 파바로티도 와서 목청을 돋우는 하늘 호수 음악회….
한국의 소리꾼도 한 자락 까는 소리가 들린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을을 찾아가니… 막걸리 한 잔에 컬컬해진 목청으로 펼치는 소리야말로 뱃속의 저 밑바닥까지 훑어 내 시원하게 해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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