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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빌라도, 포퓰리즘에 영합해 진리를 못 박은 총독

자신의 분명한 정치철학 없이 일종의 포퓰리즘(populism)에 영합하여 무죄한 의인을 로마의 잔인한 통치방식을 상징하는 십자가에 처형한 이가 있었다. 그를 처형한 이는 본디오 빌라도이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가룟 유다와 함께 빌라도는 두고두고 크리스천들의 공공의 적으로 회자되었다.

유월절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사주를 받은 유대 군중은 한 남자를 빌라도 앞으로 끌고 와서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거칠게 몰아대었다. 그들은 그에게 신성모독과 성전파괴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선동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당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놀아난 유대 군중과 그들의 거센 압력 앞에 무릎 꿇은 빌라도의 정치적 결단으로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빌라도는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로마제국의 행정구역의 하나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나머지 통치하기 힘들다고 로마 관료들이 부임하기를 꺼린 유대 지방의 총독을 지냈다.

그 까다로운 유대 지역에 총독으로 부임했다는 것은 빌라도가 군사적 행정적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관료였으며 노회(老獪)한 정치가였음을 알 수 있다. 빌라도는 유대 지역을 관할하면서 여러 번 정치적 자충수(自充手)를 두기도 하였다.

예를 들자면 그는 예루살렘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水路) 건설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성전 금고에서 돈을 탈취하였다. 이에 유대인들은 격렬히 항의하였고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발견하였고 그를 석방하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하였지만 무리들의 드센 압박과 저항에 밀려 그는 소위 '현실 정치'의 수순(手順)을 밟게 되었다. 즉 식민지의 치안을 책임진 총독으로서 소요가 발생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성난 무리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도 그를 희생양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결국 티베리우스 황제의 소환으로 빌라도는 권좌에서 실각하여 로마로 가는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그 희생이 어떤 희생이었는지를 알았더라면 그는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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