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화 특파원 '못다한 칠레 이야기'] 전세계 환호도 잠시…넘어야 할 '현실의 벽' 높다
사생활 노출로 가정 깨지고 보상금액 등 루머만 나돌아
스포트라이트·충격 이겨내야 광부들 삶 정상적으로 회복
구조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나라 전역으로 울려 퍼진 칠레 국민의 환호와 열창하는 국가 휘날리는 국기의 물결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단합을 이끌었다. 특히 칠레 정부의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위기관리 능력은 전 세계에 칠레에 대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
구조 작업이 시작된 후 22시간 만에 모두 지하를 빠져나온 광부들 중 12명은 17일 매몰 현장인 산호세 광산을 다시 찾았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광산에 도착한 이들은 가족들이 머물던 캠프를 돌아보며 감사 미사를 드렸다. 광부들은 "살아서 여기에 다시 왔다는 사실이 꿈 같다"며 감격해 했다.
그러나 이런 감격도 잠시 뿐이다. 이들은 벌써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힘들어하고 있다. 이웃들은 이들의 횡재에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언론에서 연일 쏟아내고 있는 보상금액이나 인터뷰 가격 등은 아직까지는 루머에 불과해 광부들의 미래는 불안정한 상태다. 오히려 구출된 광부들은 당장 일자리를 찾는데 고민하고 있지만 갈 곳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함께 근무했던 광부 368명은 이들이 돌아온 17일 사고를 낸 산에스테반 광업회사에 밀린 임금을 지불하라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일부 광부들의 경우 구출 과정 속에서 사생활이 노출되면서 단란했던 가정도 깨졌다.
8번째로 구조된 광부 레난 안셀모 아발로스 실바(29)의 경우 병원에서 헤어진 부인과 재회했지만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관계는 거북해졌다. 어머니 마르가리타 실바(54)는 "보상금을 챙기려고 헤어진 남편을 찾아온 것"이라며 아들의 재결합을 반대했지만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병원에서 떠났다.
최연소 광부인 지미 산체스(19)도 집에 돌아왔지만 여자친구와 딸은 힘들어했다. 그의 여자친구인 헬렌 아발론(18)은 부모의 반대로 지난 15일 열린 동네 축하 행사장에도 들어오지 못했다. 아들이 가난한 여자와 사는 걸 줄곧 반대해왔던 산체스의 부모는 이날 아들이 귀환한 기쁜 날임에도 헬렌을 외면했다.
그녀가 사는 집은 산체스의 집보다 더 높은 달동네. 먼 발치서 딸 바버러와 함께 남자친구의 귀환을 지켜본 헬렌은 "속상하다. 돌아오면 결혼하자고 했는데…. 부모님이 (아들이 돌아오면) 나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미 산체스의 경우 부모는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할 것을 요구하지만 본인은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오히려 그 동네에 남겠다고 밝히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그가 돌아갈 곳은 광산 뿐일 지 모른다.
돈방석에 대한 기대감으로 광부들의 가족들 사이에 다툼도 생겨나고 있다.
20번째로 구조된 다리오 세고비아(48)의 가족은 처음에 언론사들의 인터뷰에 기쁘게 응했으나 하루만에 태도가 돌변하고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이웃들은 "돈을 받으려고 그런다"며 가족들과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세고비아의 이웃이라는 마리아나 구티에레스는 "보상금이 나오면 이 동네를 떠나지 않겠는가"라면서 "수십 년동안 함께 이웃에서 정말 가족같이 지냈다. 하지만 너무 달라졌다. 이제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말로 부러움과 이질감을 함께 내비쳤다.
69일동안 갇혀있다 구출되면서 갑작스럽게 받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을 버리고 지하 탄광에서 지내며 겪은 정신적인 충격을 이겨낸다면 이들의 삶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장연화 기자 yhchang@koreadaily.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