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의 와인 이야기] 와인세계에서의 오감만족···삶의 질 향상
와인 양조의 파라다이스,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다
와인,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려…한식 세계화에도 큰 도움 될 듯
모든 감각이 골고루 발달해 있다면 축복받은 인생이지만 설사 오감 중에 한 가지만 발달해 있다 해도 슬퍼할 일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시각을 잃었지만 발달한 청각으로 음의 세계를 그리며 천상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유난히 감각이 무딘 사람들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훈련을 통해 섬세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웨이트 트레이닝의 반복을 통해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무딘 감각보다는 섬세한 감각이 삶의 질을 높여주고 행복을 배가시킨다고 한다. 그 오감을 훈련시키거나 만족시키는 한가운데 와인의 세계가 있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유럽 같은 구세계뿐 아니라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신세계에도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와인들이 가득 하다.
◇칠레와인과 한국음식의 마리아주
한국인의 술 문화에선 술이 주가 되고 음식은 안주로 불리며 보조 역할을 한다. 반대로 서양인들에겐 음식이 주고, 와인은 그 음식을 더 즐기기 위한 보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와인을 고를 때 음식과의 조화를 중요시 한다. 종종 서양인들은 한국 음식이 매운 맛이 강해서 와인과 어울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음식엔 짜고 매운 맛, 달고 싱거운 맛을 포함해 다양한 맛이 공존하고 있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한국 음식이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라는 구호가 한창인 지금, 우리 음식을 알아달라고 하기에 앞서 ‘지피지기’의 전략으로 서양인의 필수인 와인을 먼저 이해하는 것은 어떤가? ‘와인과 어울리는 한국 음식’으로 접근하면 한국음식의 세계화는 생각보다 수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한국음식과 산지 별로 다양한 칠레와인을 짝맞춰보고자 한다.
칠레 태평양 연안에 근접한 카사블랑카 밸리와 남쪽의 비오비오 밸리는 화이트 와인을 추천할 만 하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마일드한 음식이 인기 있는 편인데, 이 마일드한 음식에는 화이트와인이 레드와인보다 낫다. 서늘한 기후의 영향으로 상큼하고 은은한 향이 좋은 이 두 지역의 소비뇽 블랑과 어울리는 한국 음식으로는 흰 살 활어회나 세꼬시가 그만이다. 막 잡아 올린 생선의 신선함을 배가 시키고 비릿함을 없애주는 데에는 소비뇽 블랑의 산도가 한 몫 하기 때문이다. 한편 샤르도네는 크림처럼 부드럽고 적당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으며, 지나친 오크통 사용을 절제해 가볍고 마시기 편하다. 어울리는 한국음식으로 석화와 광어, 도미, 참치와 같은 살짝 숙성시킨 회를 추천한다. 생선살에 흐르는 기름기를 샤르도네의 미네랄이 잡아 주고 와인의 크리미한 텍스쳐가 생선회의 탄력을 높여준다. 석화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먹기 직전에 오픈하고 고추장 소스 대신 레몬 즙만 사용한다면 샤르도네와는 금상첨화다.
▷추천 와인 & Tasting Notes
- 에밀리아나 아도베 소비뇽 블랑 2010 (Emiliana, Adobe Sauvignon Blanc) $15
밝은 볏짚 색, 라임, 자몽과 같은 시트러스 과일 향, 허브 향, 신선한 산도, 전체 밸런스 우수함
- 에밀리아나 아도베 샤르도네 2009 (Emiliana, Adobe Chardonnay) $15
투명하고 엷은 노란색,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 과일 아로마, 넛트류의 풍미, 신선함과 여운이 돋보임.
- 베란다 소비뇽 블랑 2009 (Veranda Sauvignon Blanc) $20
그린이 감도는 밝은 노란색, 건초 향과 망고, 자몽과 같은 열대 과일 향, 신선미과 복합미, 적절한 산도.
- 베란다 샤르도네 2008 (Veranda Chrdonnay) $20
부드러운 노란색, 그린 애플, 시트러스 향과 미네랄 풍미, 미디엄 바디, 길고 우아한 여운.
마이포 밸리는 19세기 중반부터 칠레의 고급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주요 산지다. 칠레의 전통적인 포도원들이 밀집돼 있어서 칠레와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지역이다.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지만 거의 대부분이 레드와인용이고 전체 포도밭의 60%가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과실 향이 풍부하고 농익은 타닌, 풀바디가 특징인 이 지역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한국음식 중 붉은 육류요리와 조화를 이룬다. 특히 육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생갈비 구이, 씹는 맛이 있는 안창살과 치맛살 구이, 소금 간을 사용하는 수원갈비와는 최상의 궁합이다. 와인의 복합적인 향과 진하고 풍부한 타닌은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고 육질을 부드럽게 해준다.
▷추천 와인 & Tasting Notes
- 콘차이토로 마르케스 드 카사 콘챠 2008 (Concha y Toro, Marques de Casa Concha) $20
짙은 루비색, 체리, 블랙베리, 삼나무 향, 강건한 타닌, 부드러운 구조, 긴 여운.
- 벤티스케로 얄리 리미티드 에디션 2008 (Ventisquero, Yali Limited Edition) $45~48
깊고 진한 적색, 블랙베리, 카카오 향, 살짝 감도는 페퍼 향, 강한 타닌, 풀바디, 긴 여운.
- 운두라가 파운더스 콜렉션 2006 (Undurraga, Founder's Collection) $30~35
짙은 루비색, 복합적인 아로마, 블랙베리, 무화과 맛, 부드럽고 풍부한 타닌, 균형미, 우아하고 긴 여운.
- 테라마테 리미티드 리저브 2007 (TerraMater, Limited Reserve) $14
보랏빛이 감도는 진한 적색, 말린 자두, 블랙커런트, 초콜릿 향, 풍부한 타닌, 풀바디, 중간 정도의 여운
콜차구아 밸리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하여 칠레의 토착품종인 카르메네르를 블랜딩하여 만든 와인, 또는 카르메네르 100%로 만든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카르메네르는 칠레의 토착품종으로 가장 칠레다운 특징을 갖는다. 칠레와인주자들은 꽃 향과 페퍼 향이 짙고 타닌은 풍부하며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 카르메네르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품종 개발에 힘을 쏟는다. 한국음식으로는 삼겹살 구이, 비빔밥이 잘 어울린다. 타닌은 비빔밥의 고추장 소스처럼 매운 맛을 만나면 좀 무뎌지고 쓴맛이 강해지는데, 검은 후추 향이 강한 까르메네르 와인은 고추장의 매운 맛과 충돌이 덜 하다. 가끔 외국의 와인전문가들이 매운 맛을 보완하기 위해 단맛의 와인을 추천하곤 하는데, 비빔밥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단맛이 강해지면 입맛을 잃게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추천 와인 & Tasting Notes
- 로스바스코스 카베르네 소비뇽 2009 (Los Vascos, Cabernet Sauvignon) $10,
루비색, 풍부한 아로마, 부드러운 타닌, 붉은 과일 향, 균형 잡힌 구조, 저렴하지만 좋은 품질의 와인
- 카사실바 카르메네르 로스 린구스 그란 리제르바 2008 (Casa Silva, Carmenere Los Lingues Gran Reserva) $20
옅은 보라색이 도는 적색, 복합적인 아로마, 말린 자두, 검은 후추향, 신선함, 풍부한 타닌, 긴 여운.
이밖에 발디비에소(Valdivieso) 포도원의 화이트 와인들도 추천 할 만하다. 산 안토니오 밸리의 레이다 지역에서 재배한 열매로 만든 화이트 와인들은 신선하고 풋풋한 아로마와 균형 잡힌 산도를 지닌다. 한국의 삼색전, 튀김요리, 물회, 가벼운 생선회와 잘 어울린다.
▷추천 와인
- 발디비에소, 샤르도네 와일드 페르멘티드 싱글 빈야드 2008 (Valdivieso, Chardonnay wild fermented single vineyard, LEYDA) $15~20
- 소비뇽 블랑 와일드 페르멘티드 싱글 빈야드 2009 (Sauvignon Blanc wild fermented single vineyard, LEYDA) $15~20
◇산티아고에서 가볼 만 한 레스토랑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치기 아까운 레스토랑들이 있다. 애브뉴 비타쿠라(Ave. Vitacura)는 맛과 멋을 고루 갖춘 레스토랑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활달한 거리엔 고급 상점들이 즐비하고 와인을 취급하는 곳이 많다. 그 중 씨푸드 레스토랑, 미라올라스(Miraolas-tel 206 0202)는 간판이 없고 단지 4171이라는 번지수만 있다. 관광객 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으로 신선한 재료를 생명으로 한다. 애브뉴 프로비덴챠(Ave. Providencia)에 위치한 바코 (Baco-tel 231 44 44)는 와인, 음식 맛, 서비스, 분위기까지 그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와인은 개인 취향대로 잔술로 마실 수 있고 음식은 눈과 입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며 양은 과하지 않다. 페루비안 시푸드 레스토랑, 라 마르(La Mar-tel 206 78 39)의 야외 테라스는 마치 크루즈를 탄 듯한 인상을 준다. 볕이 잘 드는 자리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두 어 개 주문해 와인을 마시기에 최고 장소다.
◇칠레포도원에서 즐기는 여유와 놀이
포도원을 방문할 때 말을 타고 다니는 전통카우보이들을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후아소(Huaso)라고 불리는 카우보이들이 로데오 경기장에서 소몰이를 하는 것을 관람하는 것은 매우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폴로 경기 또한 유명한 볼거리다. 콜차구아 밸리의 카사 실바와 마이포 밸리의 아라스 드 피르케 포도원의 폴로 경기장은 세계적인 폴로 클럽의 명소로 정기적인 행사가 열린다.
포도원에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여유는 아로마테라피다. 칠레 와인에서 나는 허브 향의 근원지가 되는 유칼립투스 숲. 그 한가운데 서기만 해도 향기에 취하게 된다. 칠레인들은 식후에 레몬과 시트러스 향이 나는 차 잎, 세드론(Cedron-영어로 레몬 버르베나)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기를 좋아한다. 소화 기능을 돕고 피로를 풀어주기 때문이다. 포도원 근처에서 쉽게 발견되는 볼도 나무(Boldo tree)의 나뭇잎도 훌륭한 아로마테라피 재료가 된다. 칠레 포도원에서는 맘만 먹으면 자연 테라피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태평양의 숨결 같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와인 잔을 부딪치고 향기를 맡으며, 살살 녹는 전통음식을 먹고 자연 아로마테라피를 즐기는 일, 그리고 로데오나 폴로 경기장을 찾는 일.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되면 와인의 세계에 왜 빠질 수 밖에 없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와인세계에서의 오감만족’이다. 이 같은 오감만족을 위해서 어찌 감각을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감을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다.
제3편 <고도의 숨결,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와인들> 이 이어집니다. 멘도사는 와인생산에 있어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만년설이 쌓인 안데스 산아래 펼쳐진 포도원의 이야기를 기대하세요.
글,사진=김정미 워싱턴 중앙일보 와인명예기자
기타 사진 협조=카사 실바, 벤티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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