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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계는 잘 모른다, 시대 넘어선 이 '혁명가'를…

누구나 느끼고 즐기는 예술 창조
60년대에 '미디어 강국' 한국 점쳐
세계에 자랑하는 건 남은 자의 몫

많은 사람들이 ‘왜 백남준 작품은 값이 오르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또는 ‘어째서 동시대 대가들에 비해 저렴한가’라며 안타까워한다. 백남준은 생전에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놓았다. 그의 문재(文才)를 엿볼 수 있는 1988년 발표 에세이의 한 대목이다.

“나는 사유재산 발견 이전의 오래된 과거를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비디오아트는 신석기시대 사람들과 공통점이 있다.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비디오는 유일한 작품의 독점에 바탕을 둔 체제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예술세계에서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예술세계에서 말이다.”

신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른 이 발언은 백남준 예술세계의 핵심이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작업을 ‘부자 예술의 지배에 대항하는 가난한 예술’이라고 불렀다. 그가 창조한 것은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 ‘인지의 도구’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즐기고 깨닫는 방편으로서의 예술이었다.

백남준은 “나는 작업할 때 무의식으로 만드는데,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샤먼, 무당”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쓰고 말한 것, 행위예술로 보여준 것, 그 과정에서 형태로 고정된 것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안내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전시기획자인 김승덕씨는 “이른 시일 안에 『백남준 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고 조언한다.

더욱이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핵심은 ‘피드백(되먹임)’, 즉 반응과 변화다. 에너지를 펌프질해 서로 간에 격렬한 열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주 폭발 후 1만년 동안 우주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우주 탄생의 광대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백남준 레이저 아트의 원리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자위행위 같은 현대미술품을 경멸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함께하는 예술을 꿈꿨다. 그는 『벽암록』에 나오는 이음새의 자리가 없는 알탑인 ‘무봉탑’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늘이 없는 나무 아래 모든 사람이 타고 가는 배’, 바로 자신의 예술 목적지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건너뛰어라’ ‘세계를 축소하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는 이미 1960년대에 팩스, 위성 TV, 초음속 비행기, 달나라로 향하는 우주선들로 좁아지는 세상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구 언론이 백남준을 일러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라 부른 까닭이다. 그는 혁명가적 기질도 농후해서 “예술에 사보타주(태업)가 있어야 사회는 더 안전하다. 우리(예술가)는 사회의 도화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의 예술인류학은 지금까지 보여졌던 모든 종류의 현대예술의 개념적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이자 동시에 미디어 담론을 뛰어 넘는다”고 평가한다. 네트워크화된 사회의 도래를 반세기 전에 예견했을 뿐 아니라 우주 유목 시대에 걸맞은 신개념의 예술적 변형자였다는 것이다. 60년대에 이미 한국이 미디어 강국이 될 것이라 예언한 사람, 90년대부터 미국에서 사용된 정보고속도로라는 용어의 모델을 일찌감치 ‘전자 초고속도로’로 창안한 사람이 그다.

백남준은 오래된 미래였고, 미래의 미래이기에 소중하다. 8일 개관 2주년을 맞는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하늘나라의 그를 다시 불러내 한바탕 굿을 벌이는 이유다. “나는 무질서한 것들, 놀라움에 관심이 많다”는 40년 전 그의 발언이 지금도 날 것처럼 싱싱하기에 백남준의 정신을 오늘 그의 탄생지에서 발신해 전세계로 뿌리는 것은 남은 자의 할 일이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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