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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독서]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생명 예찬

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돌베개 펴냄

각별한 책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로 유명한 이탈리아계 유대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글이 문학적 향기와 함께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게 의외다. 때문에 아우슈비츠 증언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음에도 못 견디게 처절하거나 묵시록적 분위기는 아니다. 레비 문학은 언제나 살아 꿈틀대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아우슈비츠 10개월의 체험이라면 '휴전'은 이후 기록이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가 러시아군에 의해 접수되는 순간 독일군이 미처 '제거'하지 못했던 7000명 유대인이 있었는데 레비는 그 중 하나였다. 러시아군에 인계된 레비는 러시아군을 따라 생활해야 했다.

유럽의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탓이었는데 6월에야 고향(이탈리아 토리노)으로 돌아가는 조치가 이뤄지지만 열차여행은 어처구니없게도 10월까지 이어진다. 책은 이 고난의 여정에 얽힌 사연인데 혼란 속의 축제를 닮아 사람냄새가 살아 있다.

일테면 이동캠프가 움직이던 중에 러시아군은 위로 공연무대를 펼친다. 완전 아마추어 공연 그러나 일행은 특별한 감동에 젖는다. 왜 그랬을까? 아우슈비츠 공간에서 사람들은 무얼 기뻐하고 표현하는 능력과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했다. 이때 만난 무대란 삶의 기쁨이 되살아난 기회 '인간 말소'에서 극적으로 풀려난 계기였다.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이 책은 예컨대 길리나란 이름의 러시아 간호사 한 명을 이렇게 묘사한다.

"길리나에게는 걱정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이면 빨래통을 이고 종달새처럼 노래 부르면서 가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일요일에는 매번 다른 병사와 팔짱을 끼고 산책한다." 그녀는 약간의 바람기와 명랑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생을 앞둔 자의 존엄성"이라고 레비는 한껏 장엄하게 묘사한다. 그건 '삶을 거세당해본' 체험을 했던 레비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묘사가 아닐까? 그런 통찰의 하나가 이 작품에서 레비의 형님으로 등장하는 모르도 나홈의 한 마디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진남인 그에게 나홈은 세상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무시무시한 일갈을 던진다. "전쟁은 늘 있다. 인간을 잡아먹는 늑대는 바로 인간이다"고. 레비에게 아우슈비츠란 정상적인 역사의 추악한 변형 그러니 이제 바로 잡으면 됐다. 하지만 나홈 같은 현실적 인간에게 아우슈비츠란 본디 그러한 삶의 비극성에 대한 메타포인지도 모른다.

레비는 1919년생. 평생 화학자로 살았고 작품은 '덤'이었던 그의 핵심 작품으로는 '휴전' 외에도 자전적 장편 '지금이 아니면 언제?' '주기율표' 등이 있다. 참고로 레비는 지난 87년 고향 토리노 자택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소중한 문학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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