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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코스모스 두송이

장명옥

세살짜리 손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처음 씩씩하게 정확하게 한 말이 '꽃'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시간 날 때마다 함께 놀아 주면서 '이건 장미꽃이야 예쁘지? 이건 수국이란다 아주 크지?' 등등 중얼거리며 꽃을 보여 주고 만져 보게 하곤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등뒤에서 무언가가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꽃"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 압… 하면서 겨우 옹아리 수준이던 9개월 손녀의 입에서 꽃이라는 놀라운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퇴근해서 돌아온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고하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엄마가 헛 들으신 거겠죠" 라고 흘려 버린다.

 그때까지 둥둥대는 가슴을 진정 못하고 들 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게다. 뒤 늦게 들른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손녀가 "꽃꽃꽃" 하면서 차례로 집안에 있는 꽃들을 손가락질 하며 말하는 것을 본 온 식구들은 입을 벌리고 놀라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터진 아기의 말문은 일취월장한다. 열 달이 되었을 때 들른 마켓에서 "딸기!" 라고 말하며 손짓을 하자 점원이 놀라 "얘가 딸기라고 했나요?" 하면서 묻는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쳐다 보기도 했었다. 돌때가 되도 한두 발자국만 겨우 뗄 정도로 걷는 것을 무서워 하면서도 손님들에게는 못하는 대꾸가 없이 종알 종알 잘도 떠들어 대는 귀염둥이였다.

 이제 어느새 세 살도 훌쩍 지나 예쁜 드레스 차려 입고 노래하고 춤추기 좋아하고 '나는 공주야'를 입에 달고 지낸다. 옷마다 꽃무늬가 있어야 좋아한다. 때론 꽃무늬가 없는 예쁜 옷을 사다 주면 속상해한다. '꽃 없잖아!' 이 한마디면 끝이다.

어쩌다 꽃이 없는 옷이 생기면 그 옷을 입히느라 여간 힘든게 아니다. 목걸이나 핀이라도 꽃이 있는 것을 찾아서 붙여 주어야 한다. '꽃!' 손녀에게는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달포 전에 유아학교가 끝난 후 남편이 손녀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때 이르게 일찍 핀 코스모스를 보더니 두 송이를 따 달란다. 그 꽃을 내게 주면서 "할머니 코스모스 예쁘지? 이것봐 분홍 코스모스야. 하나는 할머니 꺼 하나는 내 꺼"라 말한다.

손님들이 오셔서 한참 분주한 시간이었다. 대충 "고마워"라 말하면서 '2개 뿐인 꽃송이를 어쩌나?' 하다가 급한대로 식탁위에 있던 2개의 화분에 하나씩 꽂아 놓았다. 점심 식사후 손님 몇 분과 길 건너 바닷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돌아 왔을 때쯤엔 난 이미 코스모스를 잊어 버리고 있었고 손녀도 투정없이 자기 집으로 갔다. 닷새쯤 지난 점심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데 식탁에 있는 뭔가가 눈을 끄는 것이었다. 분홍 코스모스 한 송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왜 그래? 그이도 놀라 묻는다. 분홍 코스모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화분에는 생생하게 고운 분홍 코스모스가 우리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웬 코스모스?'라는 표정으로 묻는 남편에게 '손녀딸이 꺾어다 준 꽃이 아직도 싱싱하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경황없이 바쁜 중에 받은 두 송이를 하나는 물이 촉촉한 곳에 하나는 좀 마른 곳에 꽂아 놓은 채 잊고 있었다.

그중 물이 촉촉한 화분에 있는 꽃은 여전히 예쁜 그대로 꼿꼿이 피어 있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찾아 본 다른 한 송이는 바짝 말라서 색깔은 거무튀튀해져 있었다. 두 송이의 코스모스를 함께 보면서 마음은 천리만리를 달린다.

 식사후 차 한잔을 앞에 놓은 채 창 밖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살아 있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은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뿌리에서 따온 꽃들 아무 생각 없이 꽂아 놓았던 그 꽃들. 옮겨 놓인 화분에 따라 달라진 오늘의 모습. 꽃 뿐일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들은 어떤가?

 30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 부부는 굳게 약속했었다. 누구든 하나가 한국으로 돌아가자 하면 다른 하나는 꼭 반대를 하기로. 힘들어도 참아 내자는 약속 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등 세 아이를 데리고 정착하기에는 모든 것이 힘만 들던 날 들이었다.

남편이 보면 속상해할까 봐 혼자 숨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인타운의 아파트 2층에 세들어 살던 날들이 생각난다. 애들이 신난다고 뛰기만 해도 아랫층에서 뛰어 올라 왔다. 한국에서의 버릇대로 노는 예쁜 애들을 그만 두라고 못 놀게 할 때의 속상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덕이었나? 우리는 이리저리 융통하고 시어머님의 보증으로 계를 일찍 타서 이민 1년 10개월만에 셋방살이를 정리하고 태평양 바다가 출렁대는 바닷가 동네로 집을 사서 이사왔다. 30년이 지나도록 지금도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누군가가 어디 사세요 물으면 내 대답은 언제나 한가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그 오두막에 살아요." 오막살이면 대순가? 애들 맘대로 뛰어 놀고 꽃피고 새 우는 예쁜 아침에 마주보며 맘놓고 웃을 수 있는 곳인데. 뒤뜰에서 공놀이도 하고 자갈 뜰에서 물놀이도 하고 큰아들이 친구집에서 분양 받아온 자그만 강아지를 길러도 되고.

그런 조그만 행복들에 들 떠 있을 때의 우리는 물이 촉촉한 화분에 놓여졌던 걸까? 버거워 했던 어려움들 그건 또 뭔가? 그쪽만 물이 메말라 있었던 걸까?

 그때는 차도 한 대 밖에 없었다. 남편이 차를 몰고 나가면 우리는 속수무책. 동네 마켓에서는 쌀도 두부도 안 팔았다. 한국음식이 필요하면 무조건 한인타운으로 가야만 했다. 감기가 들어 눈물 콧물 줄줄 흘리던 어느 날이었다. 고춧가루 듬뿍 뿌린 콩나물 국 한그릇만 먹으면 곧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그 먼 한국마켓까지 갈 수가 없었다.

나에게만 그렇게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애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 보면 한국 애들은 우리 애들뿐이었다. 애들이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 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지내게 되긴 했지만 처음 학교에 가서 애들이 언어 때문에 느끼는 어려움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이런 어려움은 일테면 메말랐던 화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꽃에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두 송이의 코스모스를 보면서 삶이란 것도 그런 것 아닌가 느껴지는 건 웬일일까? 지금도 울타리 곁에 핀 코스모스는 바람에 한들거리며 아름답게 피어있다.

씨를 다시 뿌리지 않아도 저 혼자 해를 이어가며 싹 틔우고 꽃 피우는 온 동네의 귀염둥이다. 계속 관심을 갖고 돌보면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예쁘게 꽃 피울 것이다. 꽃과 나의 삶을 엮어 보는 한 순간이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혼자 중얼거린다. 귀여운 손녀딸에게도 물이 촉촉한 화분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애를 쓰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한다.

<약력>
'한국수필' 등단
LA수향 문학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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