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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부사장 겸 여성 임원 모임 WIN 회장

"ABC(Ambitious 꿈, Brave 용기, Confident 자신감) 명심하고
'그만병(그만하면 됐다는 나약함)' 조심하라"

5년 만에 부장→전무 고속 승진…한국 생보사 최초의 여성 부사장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기업도 성공하고 직원도 행복해


지난달 20일 오후 일본 도쿄 게이오플라자호텔. '여성을 임원실로 보내자'는 주제의 토론회에 손병옥(58) 푸르덴셜생명 부사장이 한국을 대표해 지정 토론자로 나섰다.

"한국이나 일본 여성이 소극적이고 얌전하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소프트파워를 지닌 여성들이 우위에 설 것입니다." 손 부사장의 거침없는 발언에 200여 명의 청중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토론회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여성 리더스 네트워크(Women Leaders Network) 회의의 일부로 일본 여성단체인 J-WIN(Women's Innovative Network)이 주관했다. 주로 직장 여성들이 미래의 리더를 꿈꾸며 앞서간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듣는 자리였다.

 손 부사장은 추석 연휴를 바쁘게 일본에서 보내고 24일 오전 서울 역삼동 푸르덴셜생명 본사로 출근하자마자 중앙SUNDAY와 만났다. 그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병행한다며 일에 50% 가정에 50% 하는 식으로는 양쪽 모두에서 패배자가 되고 만다"며 "일에도 100% 가정에도 100%의 최선을 다하되 시간관리에 철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퍼우먼이 되거나 여성다움을 버릴 필요는 없다. 여성 특유의 배려하는 마음과 섬세함.유연함은 21세기 리더의 필수 덕목이므로 적극적으로 키우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국내 생명보험업계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된 그는 현재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보험영업을 제외한 인사.재무.투자.교육.홍보.준법감시 등 경영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은 거의 다 내가 인터뷰해 뽑았다"는 손 부사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푸르덴셜의 어머니'로 불린다. 2007년부터는 한국 여성 임원들의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 www.win.or.kr)의 회장으로 차세대 여성 리더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여성 친화적 기업문화 조성과 여성 리더십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푸르덴셜이 여성 친화적 기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한가.

 "없다."(미소 지으며)

  -없다니 무슨 말인가.

 "특별한 게 없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라. 여성 우대 제도나 혜택이 있다는 자체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떠나 모든 직원에게 능력에 따른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면 그런 제도가 필요없다. 진정한 여성 친화는 차별도 우대도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여성들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점이 있을 텐데.

 "산후휴가나 육아휴직 등은 당연히 법에서 정한 대로 시행한다. 그 밖에 육아 문제로 급한 사정이 생기면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 준다. 예컨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급식당번이 돌아왔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로 가라고 한다. 간혹 못 가게 하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다. 잘못하는 거다. 회사가 직원을 배려해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생긴다. 그런 사람이 일도 더 열심히 한다."

  -'유리천장'이란 말처럼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지 않나.

 "나는 유리천장을 믿지 않는다.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21세기에 유리천장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어느 고용주인들 능력 있는 직원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쓰지 않겠나. 물론 한국 기업들이 외국에 비해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 '기회의 문'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열린다."

  -WIN의 회장을 3년째 맡고 있다. 어떤 단체인가.

 "국내 기업과 다국적 기업의 여성 임원 120여 명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사적인 만남이 아니라 정식으로 여성가족부의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어렵게 임원 자리까지 올라온 여성들이 후배들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해 보자며 2007년 11월 창립했다. 취지에 공감해 첫 모임에 갔더니 뜻하지 않게 회장으로 추대받았다. 처음엔 가슴이 덜컥했는데 하면 할수록 중요한 일이란 확신이 생긴다. 언젠가 은퇴하면 이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

  -WIN에서 주로 하는 활동은.

 "가장 역점을 두는 활동은 1년에 두 차례 여는 '차세대 여성 리더 콘퍼런스'다. 현직 여성 임원들과 중간 관리자급 여성들을 멘토-멘티로 엮어 주는 자리다. 여성은 아무래도 남성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쉬운데 그런 점을 보완하고 롤모델을 제시한다.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각종 고민거리도 진지하게 상담해 준다. 올해는 5월에 이미 한 번 했고 다음 콘퍼런스는 11월 22일에 개최할 예정이다."

"자신의 운은 자신이 만든다"

 손 부사장은 1974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서울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70년대 초반은 대졸 여성이 직장에 다니려면 상당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딸의 취직을 반대하던 어머니는 "3년 넘게 다니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만 있을 순 없었다"는 손 부사장은 어느덧 30년 넘게 직장 일을 하며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96년 푸르덴셜생명에 인사담당 부장으로 합류한 이후에는 1~2년마다 이사.상무.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맡은 일은 누구보다 잘하려고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상사들이 좋게 본 것 같다"며 겸손한 답을 내놨다.

  -푸르덴셜생명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은퇴한 제임스 최 스팩만(한국 이름 최석진) 푸르덴셜 회장과의 인연 덕분이다. 그분은 체이스맨해튼과 HSBC은행에 근무할 때도 상사로 모셨다. 당시 주미대사관 상무관으로 근무한 남편을 따라 3년간 미국에 살면서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 다시 일을 구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스팩만 회장이 불러줬다. 급여도 직급도 묻지 않고 무조건 '예' 하고 따라 나섰다."

  -국내 생명보험사에서 여성 부사장은 처음이었다.

 "사실 영업이나 상품 개발 같은 정통 보험 업무가 아닌 후선 업무를 해 왔다. 그래서 '업계 최초'란 말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보험 분야의 후배 여성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항상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조직이 성공한다'는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 행복한 회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승진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언젠가 스팩만 회장에게 '저처럼 운이 따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라고 했더니 'You made your own luck(당신이 자신의 운을 만들었다)'이라고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리더를 꿈꾸는 후배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BC'를 기억하고 '그만병'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A는 ambitious 즉 꿈을 크게 세우라는 것이다. B는 brave 두려워하지 말고 C는 confident 자신감과 믿음을 갖고 넓은 세상을 무대 삼아 꿈을 펼쳐야 한다. 그만병은 '이제 그만(이만)하면 됐다'는 나약한 생각을 말한다. '여기까지 해 봤으니 됐어' 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리더를 목표로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WHO?

1952년 부산생. 경기여고·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대학교수가 꿈이었으나 취업으로 진로를 바꿔 체이스맨해튼·미들랜드·HSBC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했다. 금융 관련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직장을 다니며 서강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93년 주미대사관 상무관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남편은 중소기업청장과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지낸 고(故) 이석영씨다. 미국 생활 중에는 조지메이슨대에서 영어교수법(TESL)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96년 푸르덴셜생명에 인사부장으로 영입됐다. 이후 이사·상무·전무를 거쳐 2003년부터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7년 11월부터는 여성 임원 모임인 WIN 회장도 맡고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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