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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뿌리 통째로 뽑기, 마음 다스리기에 있지요

서울 강북구에 사는 이모(35)씨는 1년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툭하면 윽박지르고, 조그만 실수에도 욕설을 퍼붓는 직장 상사 때문이다. 처음에는 맞대응하다 차츰 ‘내가 못난 탓이지’ 하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직장을 그만두자니 쌍둥이 아들과 아내를 볼 면목이 없다. 정신과 병력이 남을까 봐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우울증 약만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하지만 약을 먹은 뒤 여섯달 정도부터 몸에 이상한 변화가 왔다. 체중이 차츰 늘어 10㎏이나 쪘고, 발기부전과 심한 어지러움증이 생겼다. 의사는 우울증 치료제 때문일 수 있다고 했지만 약물 부작용보다 우울감이 더 참기 힘들다.

정부가 5년마다 시행하는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0명 중 6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2001년에 비해 2006년에 40%가 늘어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특히 남성 환자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우울증 환자의 증가와 함께 약물 복용도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약물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 항우울제의 남용은 부작용과 함께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허대석)은 ‘우울증, 자살 그리고 한국사회’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어 우울증의 현황과 비약물 요법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한양대구리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 증가율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 자살자의 50%가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우울증 환자는 활동량이 줄기 때문에 기존의 만성질환이 급격히 나빠진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세로토닌 분비 등이 떨어져 전신 통증을 호소한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가정 불화의 원인이 돼 사회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치료 현실은 열악하다. 대부분이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중증 우울증이라면 약물을 반드시 처방해야 하지만 경증에서 굳이 약물을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약물 의존도가 높은 이유로 “비약물 치료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고, 환자도 빠른 효과만을 원해 획일화된 약물 처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론 한계…부작용도 유념해야

우울증 치료제 처방 건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가 정신건강실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336만8486건이던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2008년 547만4566건으로 크게 늘었다.

치료 패턴도 바뀌었다. 2006년에는 비약물 치료가 약물 치료보다 2배 더 많았지만 2008년에는 역전돼 2배 더 적었다.

우울증 약에 의존하는 치료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부작용이다. 우울증 치료제 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SSRI계는 몇몇 약에서 성기능 장애(발기부전·쾌감 저하)를 불러온다. SNRI계는 노르에피네프린에 작용하기 때문에 고혈압·오심 등이 유발될 수 있다. 세로토닌 방출을 증가시키는 NaSSa계는 체중 증가의 위험성이 있다. 박용천 교수는 “논문에 따라 적게는 5%, 많게는 30%의 환자가 이런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곧 재발이 일어나며,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은 대개 대인관계나 환경요인 때문에 생긴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안정되긴 하지만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변 요인은 변하지 않아 약효가 떨어지면 대부분 재발한다”고 말했다.

약 안쓰는 치료, 재발 줄여

약물 치료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약물 요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 지정 우울증 임상연구센터’는 지난 5년여에 걸쳐 전 세계의 비약물 우울증 치료법을 모아 검증한 뒤 지침서를 마련했다. 치료 효과에 따라 높은 등급과 낮은 등급으로 나눴다. 가장 효과가 높다고 검증된 것은 독서 치료와 운동 치료다. 우울증 환자에게 맞게 짜인 스토리를 읽으며 우울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독서 치료법이다. 『필링 굿(Feeling good)』 『매니징 앤사이어티 앤드 디프레션(Managing Anxiety and Depression)』 등이 대표적인 책이다. 곧 한국에도 출판돼 치료서로 활용될 예정이다.

예컨대 우울증으로 ‘3개월밖에 안 남았네’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전문의가 권하는 책을 읽으면 ‘3개월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한다.

앞지르기를 하는 차를 볼 때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도 독서 치료를 거치면 ‘아, 저승길로 가는 길을 내가 양보해 줬네’ 등의 인식으로 바뀐다는 것. 네덜란드 연구팀의 논문 등에서 독서 치료는 약물 치료와 비슷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운동 치료법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30분, 약간 숨이 찰 정도의 걷기나 뛰기를 주 3~5회 하면 약물 치료만큼 효과가 있었다. 박 교수는 “거의 모든 논문에서 운동이 우울증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며 “운동이 엔도르핀 분비를 증가시켜 우울감을 낮추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안정훈 실장은 “비약물 치료법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기 때문에 재발을 줄일 수 있고, 부작용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 이민수 교수는 “초기 우울증 환자는 비약물을 위주로 치료하고, 중증 우울증 환자는 약물을 쓰면서 비약물적인 치료를 병행하면 우울증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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