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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작은 것도 고유한 가치 있어

김지완 주임신부/벤투라 한인성당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못 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1850년경 어느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추장 시애틀(워싱턴주의 시애틀은 이 추장 이름을 딴 것)이 당시 미국 대통령 피어스에게 보낸 메시지 안에 들어 있는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 땅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어머니'였다. 어머니 품 안에서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하나 같이 다 신성한 것이며 사슴 말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등과 더불어 한 형제였다. 만물이 가족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은 가톨릭 교회가 생태학의 수호자로 선포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도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님이라 불렀던 태양과 누님인 달 물과 불 그리고 지구 그 자체를 향해 지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로 피조물을 통하여 피조물과 함께 피조물 안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을 관조하였다. 프란치스코의 시각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경배하듯이 다른 피조물도 하느님을 경배하고 있었다. 피조물을 향해 이같이 성인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열릴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복음 말씀의 묵상과 실천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모습을 깊이 깨달으면서 부터였다.

하느님의 말씀께서 우리 세상 가운데로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간성 안에서 말씀은 이 지상 세계에 함께 하시며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뒤섞이시면서 우리 인간적 삶의 방식을 사셨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오셨다는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또 한센병 환자에게서 소외되고 모욕받는 사람들 속에서 강도같은 범법자나 교회로 부터 파문 당한 이들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겸손하신 현존과 그들 각자를 향한 놀라우신 사랑을 경험했다. 성체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온전히 감추시리만치 그토록 겸손하신 하느님의 현존은 강도나 도둑질한 형제 교회에서 조차도 손가락질 받는 자매 나아가 파괴되고 있는 '산림' 형제 오염되는 '강' 자매에게로 까지 이어진다.

감추이시며 겸손되이 우리 가운데로 내려 오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관련된 영성은 중세 프란치스칸 학자였던 둔스 스코투스에 이르러 한층 더 심화된다. 이를 위해 그는 라틴어로 '헥체이타스'(thisness 개체성)라는 용어를 따로 만들었다. 포도 송이를 한 번 살펴보자. 같은 가지에 달린 포도 송이라 할지라도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this) 포도송이는 바로 옆이나 위에 달리 포도 송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어떤 것(직업 가족 인종)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각자 만의 고유함을 지닌다.



우리 각자는 통틀어 창조된 인류 안에서의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개별적으로 원해졌고 개별적으로 사랑 받는 아주 특별하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 채 창조되었다. 한 가지 더 예를 보자. 하느님께서는 미사 때 성체 성사를 통해서 바로 그 고유한 성사적 순간에 이처럼 각기 유일하고 개별화된 각 사람과 함께 하나되면서 우리 창조된 세상의 구체적인 영적 장소(마음)에 현존하신다.

'헥체이타스'는 포도 송이 혹은 각 포도알처럼 아주 작은 것까지 에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시애틀 추장이 그것 없이 인생에 뭐가 남겠냐고 했던 쏙독새의 울음소리라든지 숲속의 안개 더욱 놀랍게는 모래 기슭에서 반짝거리는 무수한 모래 알갱이에서도 즉각적으로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듯 느끼게 되는 것은 이 구체적 피조물들 안에서의 하느님의 거룩하고 겸손하며 신비스러운 현존 때문일 것이다.

평범하거나 대수롭지 않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해서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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