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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한국경제] 김기창 '구멍가게'···자식들 공부 밑천이었던 경제터전 '구멍가게'

근력없는 노인들 집앞 개조해 열어
아파트 들어서며 '역사 뒤안길'로

동네 구멍가게는 가난한 시대를 살아가던 서민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돈이 없으면 어머니들이 월급 나오면 갚겠다며 외상으로 봉지 쌀 연탄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갖고 올수 있는 곳이었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담배나 소주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던 곳이었다. 그리고 가게 주인에게는 '티끌모아 태산'은 아니더라도 자식들 공부시키면서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경제터전이었다.

이 그림은 운보 김기창이 군산의 처가에 피난 가있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당시 그는 군산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 점 그렸다. 이 작품도 그때 그린 '서민 시리즈' 중의 한 점으로 판잣집처럼 생긴 구멍가게 모습이 담겨있는 '현대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운보가 이 그림을 그린 1952년은 6.25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전선은 38선 부근으로 좁혀졌을 때다. 후방의 도시들은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집에 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사람들은 가게를 차렸다. 부산에 국제시장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고 각 지방에 있는 재래시장도 다시 문을 열었다.

시장에서 점포를 차릴 재력이나 나이가 너무 들어 시장판으로 나갈 근력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 앞을 개조해서 구멍가게를 차렸다. 그리고 오징어와 눈깔사탕 등 술안주와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를 팔았다. 이 그림에서 동생을 업고 온 누나는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니 고무신조차 귀하던 시절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할머니의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이다. 좋은 화가는 이렇게 주인공의 표정에 시대의 모습을 담아낸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무슨 기뻐할 일이 있었겠는가.

어쩌면 늙은 아들이나 손자가 아직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물끄러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표현이고 동시대의 아픔을 담은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판잣집처럼 생겼던 구멍가게는 60년대로 들어오면서 규모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연탄 쌀 라면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비롯해 야채와 생선도 팔았고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삼립 빵과 여러 종류의 과자류도 취급했다. 70년대부터는 구멍가게에도 냉장고와 냉동 '아이스크림 통'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시원한 맥주 콜라 사이다 오란 씨 그리고 '삼강 하드' '브라보콘'과 같은 아이스크림이 매상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국민 안주' '국민 과자'로 불리는 새우깡이 구멍가게에 나타난 것도 1971년이었다. 따라서 구멍가게는 크기는 작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한국 양조산업과 과자산업 그리고 아이스크림사업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70년대를 살아온 중장년층에게는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이 몇 가지씩 있다. 그래서 LA에서 활동하는 이정아 작가는 구멍가게로 아버지 소주 심부름 다니던 추억을 소재로 '외상장부'라는 수필을 썼다.

"동네 구멍가게인 평화수퍼에는 외상장부가 있었다. 가게주인 아주머니가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쓰던 손바닥만한 공책이었다. 겉표지엔 '신문사 집'이라고 적혀있고 한 달에 한번 아버지 월급날에 외상값을 정리하곤 했다. 다른 집은 그 당시의 흔한 반찬거리인 두부나 콩나물이 주종이었는데 우리 집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주2 소주4' 이거나 아예 같다는 표시로 땡땡점 두개만 주욱 찍혀있었다. 2홉들이 인지 4홉들이 소주인지만 구별하면 외상값 계산은 쉬웠다." ('퓨전수필' 2010년 여름호)

이렇게 훈훈한 인정이 오가던 동네 구멍가게는 아파트 건축을 위한 재개발과 24시간 편의점 그리고 대규모 할인점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으면서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게 한다.

이충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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