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다 죽어서 나오자" 태극 소녀들에게 축구장은 놀이터
25일 일본과 U-17 여자월드컵 결승 '위대한 도전'
"얼른 대회 나갔으면 좋겠다" 두려움보다 자신감으로 똘똘
일본 개인기·수비 좋아…강한 압박 축구가 우승 열쇠
최덕주 감독이 이끄는 17세 이하(U-17) 여자축구 대표팀이 25일 오늘 트리니다드토바고의 포트 오브 스페인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 결승전에 나선다. 상대는 일본.
한국 축구 역사에서 FIFA 주관 대회 결승전에 서는 건 이들이 처음이다. 이미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쓴 태극소녀들. 하지만 '우승'이란 목표가 남아 있어 스스로를 다잡았다.
한국 선수들은 24일 일본의 경기 비디오를 보며 필승 의지를 다졌다. 최 감독은 "일본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좀 더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이기고 돌아가자"고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즐기는 축구로 꿈을 이룬다= 스트라이커 김다혜(17.현대정과고)는 누구보다 이번 대회를 기다렸다. 올해 남아공 월드컵(16강)과 U-20 여자월드컵(3위)에서 보여준 오빠.언니들의 선전에 꿈이 커졌다. 그는 "오빠들도 언니들도 정말 부럽다. 우리도 빨리 그런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컸던 것은 그간 쌓아온 성적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여자축구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여자축구 강국인 일본과 북한을 준결승과 결승에서 차례로 꺾었다. 대회 개막이 코앞에 닥쳤을 때도 이들은 자신만만했다. 수비수 신담영(17.동부고)은 "우리도 최소한 3위는 해야죠. 언니들도 3위를 했는데"라고 목청을 높였다.
선배들의 유명세도 이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됐다. 여민지(17.함안대산고)는 "대표팀에서 같이 방을 쓰는 (지)소연(20.한양여대) 언니가 유명해지니까 재미있고 신기하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다혜는 "여자축구 인기가 높아져서 여자선수들 몸값도 올라가면 좋겠다. 대표팀 오빠들 연봉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도 잘하면…"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이들에게 축구장은 가기 싫은 전쟁터가 아닌 '꿈이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놀이터다. 주장 김아름은 스페인과 준결승을 앞두고 "재미있게 즐기다 죽어서 나오자"고 소리쳤다. 나이지리아도 스페인도 '즐기는 태극소녀'를 당할 수 없었다.
◇강한 압박으로 일본에 맞선다= 일본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페인에 1-4로 크게 진 뒤 4연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개인기가 뛰어난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약체 베네수엘라.뉴질랜드를 맞아 12골을 퍼부었다. 수비도 견고해 아일랜드와 8강전 북한과 준결승에서 한 골씩만 내줬다.
일본의 에이스는 요코야마 구미(17)다. 준결승전까지 6골로 득점 3위에 올라 있다. 여민지와 함께 골든볼(최우수선수) 후보에도 올랐다. 대회 개막 두 달 전까지도 대표팀 후보조차 아니었다가 지난달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교가와 마이(17).다나카 미나(16).가토 지카(16) 등 주전들이 부진하자 교체로 들어가 '해결사' 역할을 했다. 일본을 결승까지 이끈 견인차였다.
최 감독은 "일본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개인기도 좋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한 수 접어주는 특징이 있다. 강한 압박으로 꼭 승리해 한국 축구사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23일에는 훈련이 끝난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을 지켜볼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는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스포츠는 스포츠이지만 상대가 일본인 만큼 어려운 상황이 와도 피하거나 물러서지 말고 '내가 한 발 앞서 싸운다'는 각오로 임하자."
딸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 "엄마는 민지가 2골 넣을 것 같아"
사랑하는 딸 민지야. 엄마는 여기서 네 경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보고 있어.
이번에는 지상파 TV로 중계가 돼 아주 편하게 네 경기를 다 보고 있다. 사실 지난해 16세 아시아선수권대회 때는 TV 중계가 없었잖니. 우리 팀이 우승을 하고 또 네가 득점왕에 올라서 사람들이 네가 잘했다고들 하는데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어야지. 네가 돌아온 뒤 인터넷에 떠도는 골 모음을 보여줬을 때에야 잘했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감회가 새롭다. 엄마는 원을 풀었어. 네 경기가 당당하게 지상파 전파를 타니 더 바랄 것도 없네.
추석에 열린 스페인과 준결승은 가족들 모두 모여 네 모교 명서초등학교에서 봤다. 무릎을 절면서 나왔다면서. 경기 후 통화했을 때도 '괜찮다'고 하더니 기사를 보니 반창고투성이에 다리를 절면서 나왔다고 쓰였더라. 안 아프다고 해 걱정을 놓고 있었는데 다시 걱정이 한아름이야. 돌아오면 꼭 병원부터 가자.
그날 경기 때 첫 골을 내주고도 엄마의 마음은 든든했다. 네가 있으니까. 오히려 엄마는 첫 골을 내주면 꼭 이길 것 같아. 너희들은 지고 있으면 오기가 생겨서 더 잘하곤 하잖니. 그래도 일본전에서는 꼭 선제골을 넣었으면 해. 결승전이니까 앞서간다고 해서 해이해지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으니. 우승이 코앞이니 네가 두 골 정도 넣고 3-1로 이겼으면 좋겠다. 너도 두 골 넣고 싶다고 인터뷰했더라. 우리 모녀는 텔레파시가 통하는가 봐.
사람들이 3관왕 이야기를 하던데 엄마는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어. 우승만 하고 돌아와도 엄만 정말 네가 자랑스러울 거다. 엄만 너 여섯 살 때(1998년)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US오픈 우승하는 걸 보고 너를 꼭 멋진 골프 선수로 키워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멋진 축구 선수가 됐네. 네가 아플 때는 후회도 많이 했지만 축구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지난달 (지)소연이가 청와대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 나도 우승해서 청와대 가고 싶어요" 그랬지? 우승하면 네 소원 이룰 수도 있겠네. 돌아오면 엄마는 맛있는 '집밥' 해 줄게. 엄마 아빠는 우리 딸 민지를 정말 사랑한다. 파이팅!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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