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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문득 되돌아오는 것들

신복례/편집부 차장

세상 참 재미있다. 오십년도 채 살지 않았는데 세상 변하는 속도가 하도 빠르다보니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흥망성쇠 돌고 도는 세상사 이치를 눈으로 보고 체험을 통해 깨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추석에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송편을 빚었다.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와 뜨거운 물을 부어 반죽을 한 뒤 미리 준비한 깨며 녹두 으깬 고구마 등을 넣고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손가고 마음가는대로 갖가지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다. 하얀 쌀가루 반죽을 매만지면서 문득 떠오른 풍경은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었다.

지금이야 남아돌아 처치곤란 천덕꾸러기가 된 쌀이지만 60~70년대 흰쌀밥은 부의 상징이자 무슨 때나 돼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국가는 쌀 한톨이라도 아끼기 위해 '식생활은 삼할 이상 혼식으로 개선하자'는 혼분식 장려 캠페인을 펼쳤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면 쌀밥에 보리가 섞여있는지 일일이 도시락 검사를 했다.

지겹도록 보리밥을 먹고 살아온 엄마는 이제 겨우 쌀밥을 먹게됐는데 웬 보리밥이냐며 따로 보리밥을 해 도시락 위에만 살짝 얹었고 어린 딸은 들켜서 혼날까봐 점심시간이면 긴장한채 도시락 뚜껑을 열곤했다.

당시 살만해진 집의 엄마들은 많이들 그랬다.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부모들은 어떻게해서든 자식에게 만큼은 김 모락모락나는 흰쌀밥을 먹이고 싶어했다.

그런데 지금은 흰쌀밥만 먹는 집 주변에 많지 않다. 아니 게으르고 건강에 무심한 주부 같아 보일까봐 누가 집에서 무슨 밥 먹느냐고 물으면 흰쌀밥이라고 말하는 것이 주저될 정도다. 그리고 당시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밥은 이제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건강식이 됐다. 물론 값도 쌀보다 훨씬 비싸다.

어디 보리밥 뿐이겠는가. 70년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앞다퉈 헐려나갔던 흙집은 웰빙바람을 타고 친환경 주거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고 화학비료대신 거름과 퇴비를 사용하는 유기농법 한방의 원리에 바탕한 대체의학 온돌방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속속 옛것들이 귀환하고 있다.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들이 오랜세월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지역의 생태적 특성에 맞게 다듬어진 것들이고 그래서 사람이 몸담고 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건강에도 훨씬 더 좋은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근대화 산업화의 눈으로 봤을때 누추하고 궁핍하고 불편하게만 보였던 그때문에 가차없이 내버렸던 것들 속에 알고 보니 수천년 이어져온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었음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쉽다. 옛것들은 그 가치를 재발견하며 돌아오고 있는데 그것들과 함께 사라졌던 전통사회의 미덕들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기만하다. 그때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삶의 이치도 자연스레 터득했고 공동체를 이뤘던 마을 사람들 간에는 예의와 도덕이 살아있었다. 고된 삶 속에서도 두레 품앗이를 하며 서로를 도왔다.

물론 지금 우리가 다시 전통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옛 공동체의 미덕을 꿈꾸며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사라져버린 옛 미덕들을 그리며 농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음만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얘들아 우리 조상들은 1년에 한번 추석날이 돼야 흰쌀밥에 햅쌀로 빚은 송편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풍성함을 선물한 자연에 감사했고 이웃 친지들끼리 모여 훈훈한 정을 나눴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이웃간의 정이 담겨서인지 모처럼 빚은 올해 송편은 제각각 모양에도 한가위 보름달 만큼이나 찰지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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