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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인내심 있게 제 몫 해나가야

김지완 주임신부/벤투라 한인성당

기도의 '양'인가 아니면 '질'인가? 최근에 열린 남가주 성령대회에서 어느 신부님께서 던지신 질문이다. 이 날 모인 3000여 명의 청중은 주저함없이 '기도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똑 같은 질문을 본당에 가지고 와 교우분들께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양'과 '질' 둘 다라고 답했다. 이어진 질문이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까?"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질문이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나중 질문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에게로 초점이 옮겨져 있다. 응답은 어디까지나 하느님 편에서 결정하실 문제이지 기도의 양이나 질 그 정도나 방식 등이 자동적으로 기도의 결과까지 산출해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성되이 지속적으로 바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리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도의 응답은 하느님 고유의 몫으로 남아있다. 하느님 고유의 이 신성한 영역을 독특하게도 하느님의 자유로우심으로 이해했던 학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성 보나벤투라와 함께 중세 프란치스칸 학파를 꽃 피운 요한 둔스 스코투스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장중하게 기술되고 있듯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그 홀로 전능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스코투스는 하느님의 이 같은 권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하느님의 무한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하느님께는 일체의 제한이나 한계 따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무한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가 없으신가? 스코투스의 대답은 명료하다. 하느님에게 있어서는 절대적 자유가 무한하시고(철학적으로) 또한 절대적 사랑이 무한하시다(신학적으로). 과연 그렇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와 사랑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자유로우신 행동은 언제나 하느님 사랑의 행동일 것이며 또한 하느님 사랑의 행동은 언제나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동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억압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자유 속에서 행동하시지만 선택은 언제나 어김없이 사랑과 선을 향하므로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를 기실 사랑과 하나로 봐도 좋을 것이다.

스코투스의 독창성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절대적 자유(사랑)로써 세상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터 나온 선물이자 은총이다. 한층 더 중요한 통찰은 오직 이 절대적인 하느님의 사랑과 자유만이 무한하고 필연적이라는 관점이다. 거꾸로 말해 창조된 것 유한한 것 한시적인 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거나 상대적일 뿐이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절대적 자유로 머무시는 한 하느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필연적이라 불릴 수 없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 내 목숨은 물론이거니와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다 합친다고 해도 필연적일 수 없다. 민족도 국가도 종교도 마찬가지다. 소중하다 하겠지만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오직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유와 사랑만이 절대적으로 무한하다.

참된 기도는 바로 이 사랑을 향해 나아 간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이끌리고 열망하고 의존하고 감사하고 그러면서 차츰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원하게 되는 것이기도 이다. 기적같은 기도의 응답 감동적이고 힘찬 성령의 체험을 주위로 부터 듣곤하지만 꼭 그런 체험이 없다 한들 또 어떤가! 우리의 기도는 이미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 속에 남겨졌고 하느님다운 방식으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 다만 우리는 조급하지 않게 겸허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몫을 해나가자. 크고 작은 우리 일상의 청원을 뛰어 너머 거듭 하느님의 자유와 사랑만이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탕자의 형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기도를 생각하는 내내 벌써 반나절이 다 가도록 저 햇살과 함께 빛 부시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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