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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인생의 매뉴얼, 끙끙대며 고민해봐야"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이번엔 좀 오랜만에 친구 사무실에 들른 셈이다.

책상에 마주 앉아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는데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제 손에 든 전화기를 내밀어 보인다. 손거울 같은 작은 화면에 내 얼굴이 산뜻하게 찍혀 있다. 나도 몰래 방금 찍은 스냅 사진이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낯설고 좀 추레해 보이는 그 남자의 모습에 눈을 대고 가까이서 들여다보기가 망설여진다.

사진기가 따로 필요 없다야! 그런 건 또 언제 샀노?

무슨 기기든 새로 나오면 진득하게 기다리지를 않고 상당한 값을 지불하고선 구해 오는 친구다. 밤을 새워 열심히 깨알 같은 매뉴얼을 찾아 읽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거나 화딱지를 내 가면서 기어코 작동이 되는 것을 봐야만 속이 풀린다. 특히 요즘은 컴퓨터를 많이 쓰니까 관련 프로그램이라든지 신상품 기기들은 웬만하면 다 따라잡으려 든다. 이 방면의 열기 띤 얘기를 들으면 그야말로 눈이 팽팽 돌고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러다 세상이 정말 어느 쪽으로 달려갈까?



그에 비하면 나는 한참을 뒤진다. 그리고 친구가 열심히 치우고 닦아 놓은 길 가운데 골라서 조금 두려워하며 천천히 따라 걷는다. 그래도 길이 막힐 때가 있다. 이럴 땐 혼자서 좀 해 보다 금방 친구에게 선을 넣는다. 책보다도 그림보다도 실제로 장애물을 치워 본 사람이 말로 몸으로 보여 주고 가르쳐 주는 게 백 번 쉬우니까. 그렇게 한두 번을 가르쳐 줘도 얼마 있다 또 묻게 된다. 이건 왜 또 갑자기 안 되는 거지?

종교도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나 배우고 따라 행하면 된다고 버젓이 쓰여 있는 줄은 안다. 그러나 그 깨알 같은 매뉴얼들을 사전 찾아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손끝에 익혀 실행해 볼 엄두는 잘 나지 않는다. 설사 전부를 읽고 행하더라도 실제로 문제가 풀려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프로그램이 내 화면에 금방 뜰지는 알 수 없다.

매뉴얼의 첫 페이지를 읽고 여기저기를 뒤적이다 제풀에 지친다. 아무 거나 행해 본다. 뜨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안 뜨면 일을 할 수가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눈뜬장님이요 반신불수다. 시간만 흐른다. 결과적으로 세상을 아기자기하게 잘 살아갈 수가 없다. 옆에서 내 일처럼 이끌고 잘 가르쳐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이 때는 내 친구 같은 이가 스승이요 구제자요 해결사다. 바이러스를 물리쳐 주는 백신의 공급자다. 한 마디 도움말이 백 권의 안내서보다 나은 것이다

이렇게 첨단에서 한 발 뒤쳐진 나에게도 철지나 버려진 핸드폰이 한 보따리다. 세상은 이처럼 빨리 변하고 새록새록 나아간다. 어제의 지침서가 오늘엔 별 볼 일 없어진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자꾸 자꾸 새로운 상황은 벌어지고 못 보던 문제들이 불거진다. 예나 지금이나 기본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단추 하나 사이 클릭 하나 차이를 빠트리면 도대체 작동이 잘 안 된다.

불교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나 자신도 이런 내 친구처럼 됐으면 좋겠다. 새로운 인생 문제를 한 발 앞서서 실제로 풀어 보고 같거나 비슷한 장애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친절히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깊은 산 속에서 마음공부도 해야겠지만 길거리 최첨단에도 밝아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악성 바이러스에는 어디 백신을 구할 소스라도 알려 줘야겠고. 힘겹고 답답해서 쳐다보는데도 이것 읽어 봐 하며 철 지난 메뉴얼만 툭 던져 주거나 너도 공짜만 바라지 말고 나처럼 밤새워 끙끙 혼자서 고생 좀 해 봐 하고 문 닫고 가버린다면 고통 받는 중생의 살뜰한 친구라고는 할 수 없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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