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4] LG의 '도전 DNA'
'인화(人和) '정도(正道)'에 도전 DNA 심어 끈질기고 강한 LG로
원천기술 개발에 승부 걸어…구본무 "나는 하면 끝까지 한다"
단기 성과 없어도 문책 안 해…편광판·2차전지 성공모델 확산
R&D의 성과는 금방 나오지 않는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 '팩티브'처럼 일부 결실도 거뒀지만 쏟아부은 돈에 비하면 미미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성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도 매년 수백억원을 R&D에 투자하고 있는 LG생명과학은 LG의 DNA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인화(人和)'와 '정도(正道)'를 강조해온 LG에 '도전 DNA'가 자라고 있다. 도전 DNA는 LG를 단련시켰다. '일등 LG'를 목표로 설정하고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도전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LG는 집요하고 끈질겨졌다. 평소 "나는 뭐든지 하면 끝까지 한다"고 이야기하는 구본무 LG 회장이 이런 DNA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될 때까지 한다"= 편광판.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 액정화면(LCD)에 쓰이는 광학필름이다.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과 함께 커가는 핵심 소재다. 1990년대 후반 편광판은 일본 회사 3곳만이 만들고 있었다. LG화학은 이들에게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LG화학은 독자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했으나 품질이 불안했다. 사활을 걸고 매달린 끝에 2002년 초 일본 제품의 품질을 따라잡았다. LG화학은 2009년 편광판 시장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니토덴코를 제치고 세계 1등이 됐다. 2000년 연 60억원의 매출로 시작했던 편광판 사업은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2차 전지는 더 극적인 경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국정 연설에서 "신형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조립라인을 돌고 있지만 이들 자동차는 한국산 배터리에 의해 구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한국산은 LG화학의 리튬이온 전지였다. 한 달 전 미국 GM사에 전기자동차용 전지 공급업체로 단독 선정된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LG화학은 올 11월부터 GM에 납품을 시작한다. 1998년 2차 전지 시장에 뛰어든 지 10여 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역설적으로 10여 년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다는 얘기다.
불가능해 보였던 2차 전지와 편광판의 성공은 직원들의 눈빛을 바꿔놓았다(김반석 부회장의 평가). 60여 년간 국내 시장 1위에 젖어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싹 가셨다. LG전자는 도전자 기질을 십분 발휘했다. TV시장에선 소니(세계 2위)를 휴대전화 시장에선 모토로라(세계 3위)를 생활가전에선 월풀(세계 1위)을 각각 따라잡았다.
그룹의 두 축인 LG화학과 LG전자의 변화는 도전 DNA를 그룹 전반으로 퍼뜨렸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과거 LG가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적 색채가 진했다면 두 차례 위기를 겪어낸 지금은 도전과 혁신을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LG의 요즘 화두는 '원천기술 확보'다. 올 2월 경기도 이천 LG인화원(LG그룹의 교육기관). 구본무 회장은 계열사 전무 승진자 30여 명에게 "기술 자립을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하게 된다"면서 "영속적인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는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천기술 개발은 결코 쉽지 않다. 몇 년이 걸리든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 DNA로 무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도전 DNA가 확산되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인내다. CEO가 상사가 기다려줘야 한다. 무수한 실패와 오랜 실적 부진에도 직원들을 다독여줘야 한다. 그 정점에 구 회장이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에 대해 "정말 끈질기게 기다려준다"면서 "잘못이 있어도 사람을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구 회장과 LG전자 경영진과의 컨센서스 미팅(CM)이 상징적인 경우다. 스마트폰의 부진 등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LG전자 경영진은 질책을 각오했다. 구 회장은 "주눅들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라"고 말했다. 문책 대신 격려를 통해 더 줄기찬 도전을 요구한 셈이다. 2등 3등이 1등을 잡으려면 도전은 불가피하다.
통합LG텔레콤이 최근 'LG유플러스'로 사명을 고치고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은 것도 KT와 SK텔레콤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통신시장은 포화상태고 3등인 우리로선 과감한 도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는 도전 DNA를 장려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독특한 평가 시스템이다. LG는 CEO나 임원 평가시 단기 실적에 대한 평가와 중장기 비전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한다. 인센티브도 단기와 중장기 따로 준다. 눈앞의 실적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의미다.
◇속도감을 높여야= LG는 가끔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기껏 열심히 쫓아가 놓고도 변화의 길목에서 멈칫하는 사이 선발 업체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전화로 양분되는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경영진은 오히려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될지 좀 더 지켜보고 대응하기로 전략을 짰다. 3D TV시장 진출도 반 걸음 늦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결정을 미루었다. 역시 DN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LG의 전통적 DNA인 '신중함'이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애널리스트는 "LG는 신중하고 의견 조율 과정이 많다 보니 급변하는 대외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떨어진다"면서 "민첩성을 더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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