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영 시인의 천섬&나이아가라 투어 후기] 삶의 행로에서 목마름 달랜 꿈같은 시간
나이아가라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했던가! 물의 벽, 물의 문이 되었다 결국은 깨지고 엎어져 흐르는 물들, 잠시 동안 혼절하여 깨어나지 못하는 사이 어디선가 수많은 갈매기들이 날아와 물들을 깨우면 함께 손을 잡고 왔던 친지들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이별이 아쉬워 느리게 느리게 흐르는 나이아가라. 떨어져 깨어졌던 아픔에 이별의 아픔이 더해 푸르게 멍이 든 강물.
나이아가라
물의 아우성, / 밤낮으로 쉼 없는 아우성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정령의 군대가 내지르는 함성
이 세상을 / 정화 시키는 / 정령군(精靈軍)이 된 / 나이아가라
하늘이 내리는 / 세례(洗禮)
근심 걱정 / 과도한 욕망 / 부질없는 교만
모두 씻어버리는 / 하늘의 세례 / 나이아가라
이만한 경관이라면 정자를 지어놓고 시인 묵객들이 한 수씩 읊어 편액을 붙여 놓았으련만 그런 풍류가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느님의 걸작품도 찬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 하늘의 섭리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위대한 걸작은 바로 하느님이나 할 일이지 어찌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장엄한 경관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찬양할 때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천상병 시인이 소리친다.
아니 이렇게 좋은 곳에 와 막걸리 집이 없노! 길가에 포장마차를 차리면 얼마나 장사가 잘 되겠노!
살았을 때 그렇게 마셨으면 됐지, 아직도 술타령인가?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얼마나 좋겠나! 운치를 모르는 사람들인기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인사동에 왔을 때 자네 부인에게 한 번 청원을 넣어보라고 그러지 그랬나. 나이아가라 길 가에 포장마차 하나 차리게 해달라고 말일세.
그 문딩이가 말을 듣나 막걸리 때문에 내가 빨리 죽었다고 절대로 그런 청원을 안 할 걸세.
이 사람아 살았을 때도 마누라보고 문딩이 가시나 문딩이 가시나 하더니 죽어서도 문딩이라고 하나.
목월이 자네는 시 썼다는 사람이 문딩이라는 말이 극진한 애정 표현이라는 것도 모르나 아무한테나 문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한테만 문딩이 가시나라고 한단 말이라.
시 썼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다니 그것도 모르다니 그것도 모르다니….
막걸리가 없는 나이아가라는 분명 싱겁기 그지없는 명승지다. 사람들이 이렇게 운치를 모르다니….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라면 분명 한 잔 걸치고 흥취가 도도한 기분으로 시를 한수씩 읊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낙청이나 이백 도연명 방랑시인 김삿갓 이런 인물들이 나이아가라를 알았다면 밥을 굶는다 할지라도 기어이 와보고 한 수 읊었을 텐데….
버스는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하류를 따라 내려갔다. 강 양 옆으로는 수 억년동안의 세월이 침전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암벽이 떡 시루를 자른 것처럼 그 속을 훤히 다 보여주고 있다. 바람과 물결들이 어떻게 흘렀는가를 다 기록해 놓은 암벽. 암벽 앞에 서면 인간의 한 평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이 짧은가를 알게 해준다.
강가 마을 포도 양조장에서 포도주가 익어가고 포도밭에는 포도나무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한 여름의 햇빛과 바람이 농축된 포도 알맹이는 적당히 발효되어 우리가 지쳤을 때 또는 살아 있다는 것에 기쁨이 없을 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다.
winery와 vineyard가 있는 마을, 푸른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마을.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런 마을에선 나그네가 되는 것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
푸른 포도밭이 이어지는 마을을 지나면 제트 보트를 타는 선착장이 나타난다. 제트 보트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갔다 오면 젊어진다는 뱃놀이다. 배를 띄어놓고 악공이 연주하고 기생이 노래하는 뱃놀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제트 보트의 속도와 험한 강물의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즐기는 뱃놀이다. 노는 것도 어찌 우리의 정서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온타리오 호수에서 발원한 강물이 폭포로 떨어졌다가 흘러 들어가는 곳이 에리 호수다. 그 에리 호수 입구에서 제트 보트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투어인데 안해보면 후회하는 유람 코스다.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오는 다리 이름은 레인보우. 그 무지개다리 중간이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다. 제트 보트를 타러 가기위해 캐나다 비자를 이미 다 받았으니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탑을 보려고 버스는 토론토로 방향을 잡아 어두워지는 캐나다의 밤거리를 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탑은 이미 어둠 속으로 상단의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보이지 않지만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본다. 탑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지만 세계의 제일 높은 탑 밑에까지 와본 이 기분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감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일행들은 서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주며 마음의 문을 조금씩 넓힌다.
자연 경관들을 보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밤이 되면 호텔에 들어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여정의 일부로 이국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한다. 강한 악센트의 캐나다 인이 서비스하는 호텔 바에서 한 잔 걸치는 맛 또한 여행가의 빼놓을 수 없는 낭만이다. 한낮에 나이아가라에서 간절했던 한 잔, 그 목마름을 달래는 시간, 삶의 행로에서 이런 시간을 가져본다는 것은 인생의 여백을 넓히는 것으로서 호연지기를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인생의 성취 목표를 항상 높게 잡는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조금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세상에 공간을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배려의 장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2박 3일간 일정의 마지막 날,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은 시간이다. 푸른 하늘과 초록의 대지, 뱃놀이를 즐긴 시간들이 우리의 권태로움과 나른했던 일상들을 말끔히 씻어냈다는 것을 말해주듯 일행들의 얼굴이 출발할 때와 달리 밝고 싱그러워졌다.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요 바로 삶의 질을 높이는 요체가 될 것이다. 차를 직접 운전하며 다니는 여행도 묘미가 있겠지만 여러 사람이 동행이 되어 버스 여행을 하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는 여행길이다. 운전을 직접 하면 풍경들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반추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행들이 한 버스를 타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함께 잠을 자다보면 자연히 정이 들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또한 여행에서 덤으로 얻어지는 것이니 여행에서 얻는 특별 보너스나 다름없다. 대자연과 호흡하며 진솔하게 자신의 내면과 일치되는 시간을 가져본 3일간의 일정이 꿈 속 같이 지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아침 햇살이 조용히 숲 속으로 스며들 듯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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