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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칭기스칸 백남준' 그 떠난 지 벌써 4년 다시 쏟아지는 박수

관람객 이어지는 독일 회고전…12월엔 영국서 열려

그는 죽어 땅에 묻혔지만 그의 전위정신과 영혼이 담겨 있는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흔히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라 불리는 백남준(1932~2006)의 사후 첫 번째 대규모 회고전이 11일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예술궁전· www.smkp.de)’ 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일반 공개 전날인 10일 오후 8시 시작된 전야제는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1, 2층 전시실은 사람들이 넘쳐 10 여 분씩 줄을 선 뒤 시간차를 두고 입장해야 할 정도였다. 생전에 “나는 황색 재앙이다”라고 선언했을 만큼 동양에서 온 노란 얼굴의 전위예술가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백남준이 타계한 지 4년 만에 부활하고 있다.

“분더바(놀라워)!” “다스 이스트 에스(이건 뭔가 특별해).”
‘레이저 콘’ 밑에 누워 작품을 감상하던 독일 관람객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레이저 광선은 보는 이에게 영혼이 씻기는 듯한 독특한 체험을 안겨준다. 매 순간 다른 레이저 비가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아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맑은 얼굴로 웃음짓는 장년 남녀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레이저 광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TV 부처’ 연작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공간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얼굴이 또 하나의 부처 상을 만들고 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01년 말기작까지 백남준의 대표작과 각종 자료를 촘촘하게 늘어놓은 전시장은 21세기 미디어 아트의 도래를 몇 십 년 앞서 일찌감치 내다보고 홀로 전진했던 한 고독한 선지자의 초상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백남준을 단지 ‘비디오 조각’의 창시자나 수많은 해프닝과 행위예술의 전설적 인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 자료들이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서구미술사가 새로운 미디어 예술의 영역으로 큰 발걸음을 옮기게 한 초석을 놓은 백남준을 저평가하거나 외면했던 전문가들의 편견을 깨버릴 수 있는 증거들이다. 이 작품들에 열광하는 관람객들의 열정이 또한 백남준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백남준 연구의 발신지가 되고 있는 경기도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 이영철 관장과 이홍관 학예연구사 등 한국 대표단은 개막식에 참석해 작품으로 살아 돌아온 백남준의 귀환을 들뜬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 관장은 “백남준은 동서양의 사고체계를 꿰뚫어 비디오 아트라는 작품세계로 완숙시킨 뒤 서구 문명의 교란자로 떠돌았던 예술의 칭기즈칸이었다”고 정의했다. 페키안(Paikian·백남준주의자)이라는 새 용어가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될 정도로 백남준에 대한 재발견과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백남준아트센터는 12월 17일부터 영국 테이트 리버풀로 장소를 옮겨 계속되는 백남준 회고전 일정에 맞춰 영문판 백남준 연구서를 펴내는 한편 국제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한국 미술사학자들이 세계 미술판에 ‘백남준 전쟁’의 도전장을 던지는 역사적 순간이다. 전시는 11월 21일까지.

뒤셀도르프(독일)=글·사진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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