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한국경제] 윌리 세일러 '빈틈없는 계산'
50년대 재래시장 소금가게를 통해 본 빈부차
부유한 소금장수·애교머리 손님
종업원들의 고달픈 모습 대조적
옛날이나 지금 서양이나 동양 모두 마찬가지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많은 변화를 거치며 발전한 경제수단은 장사다.
한국의 경우 장사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장사가 서민들의 본격적인 경제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이 끝난 후부터였다. 직장이 많지 않아 남자들의 취직이 쉽지적않던 시절이라 아낙네들이 재래시장에 나가 좌판 혹은 가게 터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남대문시장 중부시장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경동시장 부산 국제시장 등이 바로 그곳이다.
재래시장은 6ㆍ25전쟁 이후 근 30여 년 동안 모든 국민이 이용할 정도로 한국 유통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했고 많은 상인들은 그곳에서 성공과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 재래시장에는 서민들의 희망과 애환이 서려있다.
〈빈틈없는 계산>은 윌리 세일러(Willy Seiler)라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 화가의 작품이다. 그는 1956년부터 1960년 6월까지 3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여 13점의 한국소재 동판화를 남겼다. 〈빈틈없는 계산>은 '한국시리즈' 중의 한 점으로 50년대 재래시장에서의 장사와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아주머니가 파는 품목은 소금이다. 소금은 고대국가에서는 전략물자의 하나로 취급되었고 인구가 많던 중국에서는 제나라 때부터 소금으로 거상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소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식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품목이다.
한국 역사책에서도 소금장수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부터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소금이 국가의 전매물이었을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 때는 소금 섬을 지고 다니며 팔던 소금장수가 생겼고 1930년경부터는 5일장을 통해서 소금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소금은 생필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식탁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5일장이나 재래시장에서 소금가게를 하던 사람들은 많은 부를 축적하는 부류에 속했다.
그들은 자본을 갖고 소금을 사들여 박리다매로 팔았기 때문에 영세 상인들이 감히 경쟁하기 힘들었고 소금장수들은 이런 독점적 위치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기도 해서 '소금값이 금값이다'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금반지를 낀 손에서 부유함이 엿보이는 아주머니는 주인인듯 장사는 일군들에게 맡기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며 짙은 초록색 전대에 손을 넣어 돈을 세고 있다.
아주머니 뒤에 보이는 종업원들의 모습에서는 당시 고달픈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발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라 머리를 짧게 깎았고 장갑도 귀하던 시절이라 맨 손으로 소금을 퍼내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애교머리를 하고 장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와 돈을 받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당시의 빈부차이를 볼 수 있다.
돈이 귀하던 시절이어서인지 손님이 내는 돈을 바라보는 다른 두 명의 아주머니 표정이 절묘하다. 아니 이렇게 많은 지폐를 건네는 아주머니가 부러웠을 것이다.
당시는 종업원 월급의 액수가 형편없었다. 그래서 전차비나 버스비를 아끼려고 일하러 가거나 일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올 때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으니 돈 없는 사람들의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재래시장은 한국 경제가 근대에서 현대로 오던 과정에서 많은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장사 터였고 일터였다.
그래서 50여 년 전 재래시장의 모습과 삶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보는 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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