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9·11 9주년] 미국 자존심도 함께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붕괴'

시간대별로 돌아본 9년전 긴박했던 상황
2001년 9월11일 아침, 동시납치된 4대 항공기
세계무역센터 등 충돌…3021명 희생자 발생

9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동부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20분 사이에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완전히 붕괴지고, 워싱턴D.C의 펜타곤이 공격받았다.

사건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9년전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오전7시 59분 승객과 승무원 93명이 탑승한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이 보스턴을 출발해 LA를 향해 날아 올랐다. 이어 오전8시 1분 44명이 탄 유나이티드 항공의 UA93편이 뉴저지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08시 14분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175편이 보스턴에서 LA로, 09시 58명이 탄 아메리칸 항공의 AA77편이 워싱턴에서 LA로 각각 향했다.

출발한지 46분 후인 오전8시 45분 AA11편은 납치된채 항로를 뉴욕으로 바꿔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했다. 첫번째 충돌 18분뒤인 오전 9시 3분 UA175편은 남쪽 건물에 충돌했다. 두번째 충돌37분후인 오전9시 40분 AA77편은 워싱턴의 펜타곤과 충돌하고, 10분뒤인 오전9시 50분에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붕괴됐다. 오전 10시에는 백악관을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UA93편이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했다. 남쪽건물 붕괴39분후인 오전10시 29분에는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두빌딩 붕괴 여파로 인해 6시간56분후인 오후5시 25분 47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7호 빌딩이 주저앉았다.



세계경제도 이 동시 다발 테러 앞에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국제금리가 단숨에 하락하고, 세계 증권시장이 흔들렸다. 미국은 사건 직후 일주일간 증권시장을 열지도 못하였으며, 미국을 오가는 모든 국제 항공선도 차단되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제2의 진주만 공격’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미국 건국 이래 본토의 중심부가 외부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수는 모두 3021명으로 집계됐다. 무역센터 빌딩안과 비행기 탑승자가 2792명, 펜타곤에 추락한 비행기 승객 64명 포함해 모두 189명, 백악관으로 향한것으로 추정되며 펜실베니아에 추락한 여객기 탑승자 40명도 희생자에 포함됐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 외에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납치당한 4대의 항공기에는 모두 15명의 납치범들이 탑승한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출신으로 비행 조종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 카에다(Al-Qaeda)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했다.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31분,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어 전국의 정부 건물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국제연합·시어스 타워 등 주요 건물을 폐쇄했다.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 결정을 내린 뒤,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 장비를 파견했다.

9월 12일 테러 개입자들에 대해 사전 경고 없이 보복할 것을 천명하고, 이튿날 부시 대통령은 ‘이 테러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9월 15일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상군 투입 결정을 내리는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설득해 영공 개방 등의 약속을 받아내고, 작전명을 ‘무한 정의 작전’으로 명명한 뒤 보복전쟁에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 7일,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공항과 탈레반 국방부, 잘랄라바드공항, 칸다하르 탈레반 지휘사령부, 헤라트공항 유류저장고, 마자르 이샤리프 탈레반 군장비 집결지, 콘두즈 탈레반 지역군사작전 지휘소 등에 50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 알 카에다의 훈련 캠프와 탈레반 정부의 군사시설 등에 엄격히 제한된 선별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제한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영국 연합군은 2001년 10월 9일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하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자유로운 전·폭격기를 이용한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시켰다.

이어 다음달 22일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의 목표로 삼았던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를 뿌리뽑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지 않고 이후 중동으로 눈을 돌려 대량살상 무기 보유를 이유로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20일 만에 완전 함락시켰다. 그러나 이 전쟁은 미국에 명분없는 전쟁이란 깊은 상처만 남기고 7년 만에 전쟁을 종결했다.

■숫자로 본 9·11

3021명
테러 공격 사망자수

3051명
편부모 혹은 고아가 된 아이들 숫자

2300도
공격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 화재 최고 온도(화씨)

99일
공격후 화재가 지속된 기간

1050억달러
테러로 인한 뉴욕의 경제적 손실

6억달러
청소비용

146,100
테러로 없어진 일자리수

26일
테러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개시일까지 기간

230일
유해 수색 기간

19500
수거한 부분 유해 숫자

25%
테러후 주류 판매 증가량

천문권 기자 cmkn@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