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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3] SK의 '공격수 DNA'

'1등 사수 수비'서 '신성장 위한 공격'으로 전환

신입 70행군, 무인도 워크숍…'강한 문화' 위해 도전정신 심어
"밖에서 구경 말고 비전 공유를" 임원회의 내용 인트라넷 공개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지난해 말 중국 베이징.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만도 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SK그룹은 1999년 말 베이징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21명이 참석한 세미나를 열었다. 당시 나왔던 전략이 ‘중국 중심의 세계화’다. “계열사가 각각 추진하던 중국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고, 중국화된 기업을 만들겠다”는 발표도 했다.



꼭 10년 뒤인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다시 CEO 세미나가 열렸다. 전략·대책 모두 과거와 같았다. “중국 정부의 규제로 사업 확대가 쉽지 않다”는 푸념까지 똑같았다. 최 회장은 “앞으로 10년 뒤 베이징에 다시 모여도 같은 말을 할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내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SK에 중국 시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올해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소 잦아들자 SK그룹은 사업구조·조직문화의 DNA를 확 바꾸겠다고 나섰다. 베이징 사건이 주요 계기 중 하나였다. ‘파부침주’란 구호도 내걸었다. 밥 지을 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배수진’이다.

◆닫힌 ‘성장판’ 열어라= SK그룹의 주력 사업은 에너지(SK에너지)와 이동통신(SK텔레콤)이다. 양쪽 모두 국내 1위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선 사정이 다르다. SK에너지는 74위, SK텔레콤은 47위(가입자 수 기준)다. 국내 사업 환경도 녹록지 않다. 특히 이동통신은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정치권·시민단체에선 요금 인하 압력이 쏟아지는데 경쟁 격화로 마케팅 비용은 계속 들어간다. 가입자 포화로 손님을 더 늘리기도 어렵다. SK텔레콤은 2003년 9조원대 중반이던 매출이 지난해 12조원을 넘겼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조807억원에서 2조1793억원으로 되레 1조원 가까이 줄었다.

에너지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한국 정유·화학사의 생산 능력은 이미 국내 수요를 훨씬 넘어섰다. SK에너지도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다. 그런데 원유만 팔던 중동 산유국과 한국 제품을 많이 수입하는 중국 등이 앞다퉈 정유·화학 공장을 짓고 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이 “이대로 가다간 내 자리 지키기도 힘들다”고 말한 이유다.

SK그룹은 2002년부터 ‘투비(To Be)’ 모델이란 이름으로 3년 단위의 중기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 첫 3년인 2002~2004년은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 등으로 ‘생존’이 최대 화두였다. ‘미래 목표’를 뜻하는 투비가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투비가 됐다는 뜻이다. 2005~2007년은 성장 기반 조성이 목표였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3차 투비’ 기간인 2008~2010년은 본격 성장의 시기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천천히 죽어가는 ‘슬로 데스(Slow Death)’ 상황을 맞아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정에서 성장으로 ‘유전자 변이’= 최 회장은 요즘 “앞으로의 SK가 과거의 모습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종종 말한다. 이달 초 SK그룹이 신에너지, 산업혁신 기술 개발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2020년까지 17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더 이상 정유·이동통신 중심의 사업구조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SK가 공을 들이는 것 중 하나가 조직문화 혁신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계열사 CEO 워크숍에서 “변화의 흐름에 맞는 강한 문화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성장을 위해선 조직문화부터 이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강한 문화’를 얘기할 때 중국의 예를 종종 든다. “역사 속에서 중원을 지배한 민족이 계속 바뀌었지만 결국 가장 강한 문화를 지닌 한족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강한 문화를 위한 SK그룹의 첫째 전략은 ‘공유’다. 회사 구성원들이 절박감을 느껴야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SK가 변화를 외칠 때마다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다. 한 SK 계열사의 간부 사원은 “그동안은 경영진이 변화를 외쳐도 ‘우리 회사는 사업구조가 안정적인데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구성원과의 공유를 위해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은 자신을 포함한 고위 임원들이 참석한 성장전략 회의 내용을 회사 내부 인트라넷에 올리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정 사장과 이명성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10여 명이 참석한 성장모델 회의 내용을 올렸다. 여기에도 “(조직원과 이해관계자들이) 밖에서 구경하지 않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SK에너지의 유정준 R&M CIC(정유·마케팅 사업) 사장은 올해 울산·인천 공장과 싱가포르·베트남 등 해외 사업장을 합쳐 10번 넘게 출장을 갔다. 역시 회사가 변화하려는 방향을 알리고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인재관도 확 달라졌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새 성장을 해야 할 SK에는 명문대 간판보다는 진취적 태도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최근 기자에게 “주어진 환경에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이런 사람은 말로 안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올해 신입사원들에게 70㎞ 행군을 시키고, SK에너지가 신입사원 무인도 워크숍을 했던 것도 도전정신을 키우기 위해서다.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변화를 위해 뛰면서 SK의 조직문화는 전보다 훨씬 적극적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경영진의 회의 내용이 올라오면 금세 조회 수가 1000~2000건을 기록한다. “성장을 위해선 모두가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등의 응원 댓글도 붙는다. 그룹 관계자는 “구성원의 DNA가 안정 지향형에서 성장 추구형으로 바뀐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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