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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개신교계 모두에게 존경받아

옥한흠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1938~2010) 소천

세차게 비바람이 울었다. 그가 하늘로 가는 날, 땅에 남은 이들도 바람과 함께 울었다. 2일 오전 8시4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가 폐암 후유증으로 소천(召天·하늘의 부름을 받음)했다. 향년 72세.

이날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선 임종예배가 열렸다. 손인웅(덕수교회) 목사는 예배 설교에서 “한국교회의 큰 별이 하나님께로 가셨다“며 ”이 땅에 남은 우리들은 그가 그립고 또 그립다”고 말했다. 임종예배에 참석한 교계인사와 교인들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한국 개신교에서 사랑의교회는 묵직한 이름이다. 서울 서초동, 강남의 요지에 있는 대형교회라서가 아니다. 사랑의교회를 세우고, 이끌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옥 목사가 몸소 보여줬던 목회의 방향, 영성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적 복음주의 진영의 거목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 ‘가장 존경하는 목사’를 꼽으라면 늘 그의 이름이 올라갔다. 옥 목사는 1938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영문학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미국 켈빈신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교인 수 500명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안정적인 목회가 가능한 좋은 기회였다. 옥 목사는 거절했다. 그리고 1978년 서울 강남에서 9명의 교인만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교회명은 ‘강남은평교회’였다. 81년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때만 해도 강남은 서울의 중심이 아니었다.

개척 초기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주일 예배를 보는데 작은 키에 볼품없는 여성이 들어왔다. 맨 뒷자리에서 숨다시피 설교를 들었다. 종종 눈물도 흘렸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사라졌다. 매주 그랬다.

옥 목사는 몇 번이나 그 여성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늘 놓치고 말았다. 한 달 후에야 옥 목사는 간신히 그 여성을 붙들었다. 그리고 주소를 묻고 심방을 약속했다. 찾아갔더니 그녀는 부잣집의 가정부였다. 현관 마루에 걸터앉은 옥 목사는 이혼과 자살기도, 오랜 식모살이로 범벅이 된 그녀의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인생담을 들었다. 옥 목사는 교회를 통해 그 여성 교인을 껴안았다.

식모살이를 하던 그 여성 교인은 꿋꿋하게 교회를 다녔다. 나중에는 집사도 됐다. 그러다 병에 걸려 옥 목사의 집에서, 옥 목사의 품에서 세상을 떴다. 옥 목사는 자신의 집에서 삼일장을 치렀다. 옥 목사는 목회 인생을 통틀어 그녀를 “가장 기억에 남는 성도”로 꼽았다. 이 일화는 옥 목사의 영적 지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옥 목사는 처음부터 소외된 이웃, 가난한 이웃을 위한 목회를 지향했다. 대형교회들이 세습문제로 시끌시끌했던 2003년 말에는 LA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겼다. 정년을 5년이나 앞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2007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옥 목사는 대표설교를 맡았다. 개신교계 진보와 보수가 한목소리로 그를 추천했다. 고인은 10만 명의 청중을 향해 절규를 쏟아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 앞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됩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됩니까. 거룩하신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이놈이 입만 살아서 회개한 한국 교회의 종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 절규를 ‘명설교 중 명설교’로 꼽는다.

고인은 생전에 “은퇴 후 내 목회가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라는 우려를 했다.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기 때문이다. 교회가 비대해지면 내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의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많은 이가 옥 목사의 소천 앞에서 가슴을 친다. 그가 내밀던 영성의 나침반을 아직도 이 땅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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