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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인질극 벌이다 숨진 한국계…한인타운 거주 70대 아버지의 '피맺힌 절규'

본지와 단독 인터뷰 "아들아…아들아…내가 잘못했어"
어릴 때 똑똑했었는데 이혼 후에 돌보지 못해…97년 통화 "아버지 미워"

아들이 죽었다. 일흔을 넘긴 아버지는 30여 년이나 보지 못한 아들을 중앙일보 지면에서 재회했다. 기억 속 10대 소년이던 아들은 짧은 머리를 한 낯선 중년 남성이 되어 있었다. 아들은 1일 전세계 언론 톱기사에 등장했다.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극단적인 환경 보호를 외치며 뭔지 모를 말만 되뇌고 있다고 했다. 테러리스트라는 소리가 들렸고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 아들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메릴랜드주 디스커버리 채널 방송국에서 무장 인질극을 벌이다 숨진 제임스 이(43)씨다. 아버지는 가슴을 쳤다.

(※는 설명하는 글)

제임스 이씨의 아버지 이모(73)씨는 3일 본지와 통화에서 수차례 "아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로서 자식 곁에 있어 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현재 이씨는 LA한인타운에서 혼자 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독거노인'이다. 당뇨병이 심하다. 얼마전 수술을 한 뒤 합병증이 와서 거동이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육신의 아픔은 '내 새끼'가 죽은 슬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잘못입니다."

그는 30여 년전 아내와 헤어지면서 자식들과도 이별했다. 일본인 3세인 아내는 그와 살면서 외로워했고 결혼 생활 대부분을 친정이 있는 하와이에서 보냈다.

이씨는 큰 아들 제임스에 대해서만큼은 각별했다. 이씨는 1965년 서울 교통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를 하다가 아내를 만났고 장남 제임스를 낳았다.

"새로운 땅에서 얻은 첫 핏줄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었죠. 한국 이름을 형님 존함을 따서 '재(Jae)'라고 지었죠." (※제임스 이씨의 한국 이름은 '이재'로 외자다. 사건 당시 경찰은 이씨의 미들네임을 '제이(Jay)'라고 발표했다. 이씨는 자신의 한국 이름인 '재'를 미국식으로 편하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아들을 '천재'로 부르며 자랑스러워 했다.

"두 살 무렵인가 집 밖에서 들리는 차 엔진소리만으로 차 주인을 구별할 정도로 예민하고 똑똑했습니다. 크게 될 아이였는데…"

이혼 후 아들은 점점 변해갔다. 그렇지만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끝내 놓고 싶지 않은 아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집 사람이 죽은 지난 97년 제임스한테 전화가 왔어요. 내가 지 엄마를 버렸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크게 화를 냈어요. 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했습니다.”

뿌리 깊은 아들의 증오에 아버지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3년,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손에 쥔 신문에서 아들은 험상궂은 인상으로 세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제임스는 천성이 착한 아이입니다. 누굴 해칠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총도 딱총이었다면서요.” (제임스 이씨가 인질극 당시 들고 있던 총은 소리만 나는 ‘출발 신호용 총이다)

더 힘든 건 먼저 보낸 자식의 장례식에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이씨는 지금 병상에 누워있다. “내 새끼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지만 이 몸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 화장을 한다던데.”

질문은 이어졌지만 이씨는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낮은 숨소리만 들렸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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