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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 '김치명인' 유정임 풍미식품 대표

"김치는 내 운명이자 자식 같은 존재
여자는 약해도 여성 기업인은 강하다"

21년전 재래시장서 가게 창업…2005년 3층 공장 건물로 확장
칼슘 강화 김치 등 13가지 특허…김치 세계화로 동탑산업훈장


김치 전문 업체 풍미식품의 유정임(55) 대표에게 올해는 큰 경사가 겹쳤다. 지난달 7일 제14회 여성 경제인의 날 기념식에서 유 대표는 동탑산업훈장을 목에 걸었다. 독창적 시도로 전통식품인 김치를 발전시키고 외국인들에게 김치의 우수성을 알려 한식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올 초에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포기김치 분야의 식품명인으로도 지정됐다. 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은 무수히 많아도 김치명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유 대표를 포함해 단 두명 뿐이다.

경기도 수원시 오목천동 풍미식품 본사에서 만난 유 대표는 "24년 전 재래시장에서 작은 김치가게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유정임 미쳤어'란 말도 많이 들었지만 배추는 딸 무는 아들로 여기고 애정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치는 한국의 자존심이고 밥상은 약상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최상의 재료만 쓰려고 했다.



이제 훈장까지 받았으니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치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기에 식품명인으로 지정되고 훈장까지 받았나 궁금하다.

"김치는 자식이자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애정과 정성을 다했다.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정직하게 재료와 손맛으로 승부했다. 한참 어려울 때에도 먹는 것으로 장난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가족에게 내놓을 정도가 아니면 팔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추는 반드시 태양초 소금은 볶은 천일염을 썼다. 신선한 배추와 무를 꼼꼼하게 고르는 것은 기본이다. 당연히 김치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국내산이다. 아무리 중국산이 많이 들어와도 좋은 재료로 김치를 담그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김치 담그는 법은 어디서 배웠나.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

"친정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았다. 덕분에 나도 손맛을 타고난 것 같다. 주변에 잔칫집이 있으면 김치 등 음식 준비를 도와줬는데 '맛있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돈을 낼 테니 김치 좀 사 갈 수 없느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러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에 문닫은 김치가게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김치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열심히 했다. 부설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김치와 장류로만 13가지 특허를 취득했다."

-김치는 전통식품인데 특허의 대상이 될 수가 있나. 어떤 특허가 있나.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다. 전통식품이라고 무조건 예전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들은 김장을 담그면 계란껍질을 김치에 얹기도 했다. 계란껍질에는 칼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칼슘 강화 김치다. 조리법을 체계화해 특허를 받았다. 호남 지방에서 김치에 고기를 섞는 것에 힌트를 얻어 사골김치도 개발했다.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오리고기를 끓는 물에 익힌 뒤 숙성시켜 김치 양념에 버무린 것이다. 매운 맛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을 위한 파프리카 김치와 딸기 고추장도 특허를 받았다. 맵지 않으면서 단맛이 나니까 아이들도 좋아한다."

-훈장을 받을 때 공적사항엔 '한식 세계화에 기여'도 있었다.

"김치공장과 함께 김치박물관과 체험관을 운영한다. 단순히 김치만 만들어 팔 게 아니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광객.체험객이 해마다 1만 명 정도 찾아온다. 외국인들도 많이 와서 공장을 견학하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간다. '맛있다' '재미있다'며 반응이 매우 좋다. 경기도에서 공식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일본.호주 등에 김치 수출도 한다. 앞으로 외국인의 밥상에도 하루 세 끼 김치를 올리면 좋겠다."

86년 수원시 권선구 세류시장의 50㎡짜리 가게에서 창업한 유 대표는 2005년 오목천동의 6600㎡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3층짜리 공장과 직원 기숙사 등을 짓고 이전했다.

현재 고정 거래처는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1000여 곳 직원은 60여 명에 달한다. 인터넷 홈페이지(www.kimchicenter.com)에서 온라인 판매도 한다. 올해 매출은 70억원 정도를 내다본다고 한다.

-평범한 주부에서 창업을 결심한 동기는 뭐였나.

"일을 해야지 놀지는 못하는 성격이다. 창업 전에도 우유배달 같은 부업을 했다. 김치가게를 하면서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싸준 다음 바로 시장에 나와 김치를 담갔다. 아이스박스에 김치를 싸 들고 아무 기업체고 무작정 찾아다녔다. 고정 거래처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사업하는 짜릿함에 빠져들었다."

-24년 동안 사업을 했으면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배추 파동이 제일 힘들었다. 초기엔 자금이 부족해 많은 물량을 미리 확보해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멀리 부산 근처까지 가서 배추밭을 계약했는데 작황이 좋지 않아 통째로 갈아엎기도 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고 하면 어디선가 힘이 나왔다. 또순이란 말도 많이 들었다. 여자는 약해도 여성 기업인은 강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엔 상생 경영이 화두다. 현장에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중소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술개발이다. 그런데 식품 분야는 연구개발로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막상 가보면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2005년 공장을 확장.이전하고 최첨단 위생시설을 갖췄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주지 않고 부채비율이 높다고 따진다. 한마디 더 하자면 공공근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중소기업은 가뜩이나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데 공공근로가 인력난을 부채질하는 게 현실이다."

-풍미식품은 인력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다른 중소기업처럼 우리도 외국인 근로자를 일부 쓴다. 외국인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 월급은 한국 직원과 차별 없이 똑같이 준다. 예전에 한국 사람들도 외국에 근로자로 갔다가 설움을 많이 당하지 않았나. 한국 직원들은 배송 담당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성이다. 업종이 식품이고 CEO가 여성이니까 아무래도 여성 직원이 많다. 지금까지 한번도 직원들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우리 회사는 정년도 없다. 본인만 원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 대신 내 일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달라고 주문한다. 얼마 전에는 80세까지 일하다 나가신 분도 있고 지금도 60대 중반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한 세대만 더 지나면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김치를 사먹을 수밖에 없다. 직접 김치를 담그지는 않더라도 알고는 먹어야 한다. 어린 세대가 많이 우리 회사에 와서 김치를 배워가면 좋겠다.

우리만의 노하우나 비법이라고 감출 생각은 없다. 널리 알릴수록 발전이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연근으로 담근 김치에 푹 빠져 있다. 연근은 아삭아삭한 식감이 뛰어날 뿐 아니라 불포화 지방산을 녹여주는 작용도 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 예전엔 절에서 담가 먹던 것인데 제품으로 개발했더니 반응이 무척 좋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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