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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프로의 LPGA 뒷담화-66] 참 어른이 드문 세상

여민선/전 LPGA 선수·KLPGA 정회원·빅토리골프 아카데미 헤드프로

조용해진 연습장에서 나는 다시 연습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선수가 예선에서 떨어지면 다음 대회 장소로 이동하거나 쉬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찾아내고 싶었다. 내 안에 소리치는 용기없는 나를. 쑥스럽지만 다시 연습하고 싶었다. 다음을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연습장에서 공을 치고 있는데 내 캐디가 나를 보며 뛰어왔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잘해보자고 했고 오전 라운딩이 끝난 선수들이 하나 둘씩 오더니 "미니 힘내!" 라며 미소를 던져 주었다. 속상했지만 은근히 힘이 날려고 하는데 한국의 모 선수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큰소리로 한마디했다. "야! 여민선! 넌 이빨 빠진 호랑이냐? 이제 그만하고 애나 낳아!"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이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농담인가?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한단 말인가? 머리 속에 스치는 너무나 많은 말을 난 내뱉지 못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아저씨는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더니 껄껄 웃으며 자기 딸에게로 걸어갔다. 한국말을 이해 못하는 미국 친구들이 내 표정을 보며 다가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저 아저씨가 나더러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네!" 말이 끝나자 친구는 얼굴이 빨개지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열을 냈다.

나는 그 날 이후 다시는 그 아저씨를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 그 날 이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마음 속에 찍어두었으니까. 정말 마음에 상처가 됐다. 내가 아는 어른은 참 많이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다더니 이럴 때도 적용이 되는가 보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더 흥분을 하니 맘이 편해지는 건 왜일까. 나 역시 속물이니까 그럴까? 아니면 이 세계가 그렇게 치열하고 서로 잘 되는걸 못보는 밀치고 당기는 무대라서 그럴까?

내가 아는 골프는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아닌 골프코스와 싸우는 것이며 나의 최고의 기량이 나올 수 있도록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라운딩을 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신사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또 다시 슬퍼졌다. 어깨에 힘이 빠진 채 민박집으로 왔다. 식구들은 축 늘어진 나를 보더니 뉴욕시내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나는 주저없이 식구들을 따라 나섰다. 생전 처음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 보았다. 뉴욕 박물관과 타임스퀘어까지 일일이 볼수 있는 영광을 주셨다. 뉴욕에 있으니 꼭 뉴욕 피자를 먹어야 한다며 나를 안내했고 우린 아주 오래된 피자집을 찾았다. 얇고 파삭한 피자를 먹으며 이틀만에 벌어진 모든 사건들이 내게는 정말 엄청난 일들이었고 아프고 상처가 났지만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크고 넓고 내가 겪은 일쯤은 베시 킹선수 말처럼 어쩌면 괜찮은 아주 괜찮은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아저씨에게 할 말이 있다.

아저씨. 여자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쉬워 보이셨나 봐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건 골프를 잘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거 랍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그 어려운 일을 당연하 듯 묵묵히 해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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