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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 김수영 ADT캡스 마케팅 본부장

출산 열흘 만에 미국 출장 나선 여자
"약점인 여성성을 뒤집으면 장점이 된다"

가족과 떨어져 7년간 해외 생활 "보안 서비스가 필요한 이는 여성"
실내 감시용 CCTV '블랙박스' 자녀 걱정 워킹맘용으로 바꿔 히트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는 보안회사 여성 임원이라 눈길이 갔다. '마초' 조직에서 여성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까 궁금했다.

그런데 난감했다. 그녀 1975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36살.

리더십을 말하기에는 이른 듯 싶었다. 괜찮을까 걱정하는데 인터뷰를 위해 먼저 회의실에 들어와 있던 직원이 말했다.



"젊긴 하신데 딱 보면 카리스마가 느껴질 거예요."

잠시 후 그녀가 방에 들어오자 그 직원이 말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또렷한 눈빛이 사람을 잡아끌었다. 한국 양대 보안업체 중 하나인 ADT캡스의 김수영 마케팅 본부장이다.

김 본부장은 한양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바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한양여고에서 기간제 교사생활을 3개월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당시 대우캐리어(후에 LG캐리어에 인수합병)에 입사했다. 선생님의 길을 가려던 사람이 마케터로 변신한 것이다.

-교육대학원을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간 이유가 뭔가.

"어렸을 때부터 난 '본투비(born to be 타고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이란 어떤 곳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방학 동안 잠깐 경험해볼 요량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기획팀 출근 첫날 밤 10시30분까지 일했다. '요것 봐라 내가 해 볼 만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기 같은 거. 재밌었다. 나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교사보다 이게 더 맞겠다 싶었다."

-교사와 마케터는 전혀 다른 일일 것 같다.

"그렇지만 교사 경력이 도움이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해야 한다. 그런 능력은 마케터에게도 필요하다. 고객 입장에서 영업사원의 입장에서 임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 마케팅의 기본은 이해다."

그의 경력을 보면 '해외통'이다.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경영학석사(MBA) 출신도 아니면서 2001~2004년은 싱가포르에서 2004~2007년은 미국 본사에서 일했다. 해외 근무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바다.

-'국산'이 해외 근무를 하게 됐다. 비결은 뭔가. 가족이 있었다면 쉽게 나가지 못했을 텐데.

"운이 좋았다. 그렇지만 준비되지 않았다면 기회를 못 잡았을 거다. 회사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인정받았다. 결혼을 98년에 했다. 일찍 한 편이다. 남편이 많이 지원해주고 이해해 줬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는 1년에 많아야 여섯 번을 봤다. 그나마 미국에 있을 때는 남편도 MBA를 와서 주말마다 가끔 볼 수 있었다."

-2007년에 미 시러큐스대 MBA를 졸업한 걸로 돼 있다. 회사 다니면서 MBA를 했다는 얘긴가.

"회사가 내 가능성을 보고 학비를 대 주고 일주일에 낮 업무시간 3시간씩을 빼주는 등 배려해 줬다."

-미국 본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긴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나.

"남편과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도 가질 때가 됐고. 정착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한계가 보였다.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언제 태어났느냐고 물었더니 김 본부장 "언제였더라…" 이러면서 수첩을 편다. "2008년이네요. 제가 이런 데 약해서. 그래도 회사 매출액은 잘 기억해요." 옆에 앉아 있던 송지현 팀장은 "김 본부장이 출산 후 열흘 만에 미국 출장길에 올랐던 일화는 팀 직원들 사이에선 전설처럼 전해온다"고 말했다.

-몸조리도 안 하고 열흘 만에 미국 출장이라니.

"내가 빠질 수 없는 출장이었다. 애를 낳았다고 나 몰라라 누구에게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좀 심하다. 예정된 출장이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출산 일정을 조정하려고 했다(웃음). 예정일을 계산해 보니 출산 열흘 뒤가 출장이더라.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유도분만을 했다. 그럼 한 달 가까이 쉴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애가 안 나왔다. 일주일 앞두고 다시 유도분만을 해 봤다. 역시나 안 나왔다. 결국 아이는 예정일에 나왔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커서 고맙다. 내가 원래 체력이 좀 된다."

출산을 계기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다른 일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10여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잠시 웨딩사업 관련 벤처회사에서 일한 뒤 2년 전쯤 지금의 직장인 ADT캡스에 들어왔다.

-보안회사와 여성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남자다. 하지만 보안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냐. 여자다.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마케팅의 출발이다. 여자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우리 서비스를 팔 수 있다. 그런 면에선 보안회사 마케팅 담당자는 여자가 더 어울린다. 내가 입사 후 중점을 둔 게 '워먼즈 세이프티(Womne's Safty)'다. 예를 들어 무인감시 시스템으로 '블랙박스'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장비를 설치하면 외부에서 웹이나 휴대전화로 CCTV 화면을 볼 수 있다. 주로 소규모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가게 관리를 위해 썼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이게 일하는 엄마들에게 딱이더라. 나부터 블랙박스를 집에 설치해 애가 잘 놀고 있는지 보고 있다. 이번 달 블랙박스와 비상벨 그리고 화면을 볼 수 있는 전용 미니 모니터를 갖춘 '워킹맘 패키지'를 내놓는다. 블랙박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40% 늘었다."

-그래도 남자 직원이 대다수고 젊은 편이어서 조직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회사 밖에서는 상사라고 위엄 떨지 않는다. 내가 먼저 숟가락 놓고 물 따른다. 직원들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ADT캡스 마케팅 본부장이라는 자리가 700명의 영업사원을 꼼짝 못하게 옥죌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들 이름을 모두 외우고 따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선다. 노래도 잘 부른다. 요즘 자주 부르는 노래는 빅뱅의 '붉은 노을'이다. 랩 부분까지 소화한다. (송 팀장은 "보통 여성 임원들은 분위기를 파악해 이에 맞춰 적절한 태도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김 본부장은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워킹맘이 보면 당신은 '수퍼우먼' 같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애랑 놀아주는 시간은 부족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열정적으로 사랑을 쏟아낸다. 나중에 아이도 크면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 믿는다."

-여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여자라는 걸 장애로 여기지 말고 장점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여자가 주차를 못 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남자는 자기 차를 집어넣는 게 우선이고 여자는 남의 차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우선이라서다. 이런 상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성은 여성의 장점이다. 이런 걸 개발하면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애 낳으면서 느낀 거지만 여자가 애도 낳을 수 있는데 못할 게 없다.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걸 즐기면서 극복했으면 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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