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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사장의 '스킨십 경영'

"직원 680명 이름·얼굴 모두 기억, 이직률은 3% 미만"

직원이 행복해야 이익도 난다…'사람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
28세 때 최연소 부장 승진…2006년 첫 한국인 CEO 발탁


3월 28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 부근의 한 웨딩홀.

'송공(頌功) 지승욱 감독님 정년 퇴임식'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무대를 향해 채은미(48) 페덱스코리아 사장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제가 대리 시절 오렌지색 서류봉투를 배달하러 본사에 오시던 감독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답사를 하는 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회사가 저의 가치를 알아준 덕분에 37년 근무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1973년 입사해 만 60세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지씨를 환송하는 자리였다. 항공기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업무(화물적재직)을 맡았던 지씨는 현장에서 평직원으로 37년을 근무했다.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 따위의 유행어는 이 회사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 채 사장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정년 퇴임식엔 꼭 참석한다. "경영의 넘버원은 사람이고 사람 관계는 처음과 끝이 중요하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다.



2006년 페덱스코리아의 첫 한국인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채 사장은 직원과 소통을 중시하는 '스킨십 경영'으로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680명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한다.

웬만한 직원은 언제 입사했고 무슨 부서에서 근무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다. 사무실 복도나 현장 사무소에서 직원을 만나면 반드시 이름을 부르며 정겹게 말을 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직원이라도 꼭 '님'자를 붙여 존대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채 사장과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이 회사의 이직률은 2.94%로 한국 기업 평균(300인 이상 기업 기준 13.4% 잡코리아 조사)에 비해 훨씬 낮았다.

채 사장은 "직원은 기업의 가장 가까운 이해관계자면서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원초적 힘을 가진 존재"라며 "의외로 직원을 소홀히 대하는 기업이 많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이 행복해야 좋은 서비스가 나오고 고객 만족으로 이어져 결국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며 "페덱스의 경영철학은 '사람(People)-서비스(Service)-이익(Profit)'이고 최우선 가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페덱스는 67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항공 특송회사고 페덱스코리아는 한국 현지 법인이다.)

-전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한다니 대단하다.

"내가 그런 데 소질이 있다.(웃음) 예컨대 현장사무소를 가기 전엔 회사 전산망에서 담당 직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쭉 훑어본다. 그냥 갈 수도 있지만 조그만 성의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만나면 애는 학교에 잘 다니느냐 경조사는 잘 치렀느냐 등등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며 관심을 보이려 한다. 그런 것이 반복되면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온다."

-현장에는 자주 가는 편인가.

"자주 가야 한다. 항공화물 배송이란 게 첨단 기술산업은 아니다. 전국에 14개 사무소가 있는데 대부분 직원이 화물을 나르는 배송직이다. 이들이 힘들어 할 때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하고 회사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최대한 귀 기울여 들어주려 한다."

-이직률이 매우 낮은데 비결이 뭔가.

"사실 급여가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다. 직원들이 존중 받는다는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방문 열어놓기 정책(Open Door Policy)'이란 특이한 제도가 있다. 누구라도 자유롭게 경영진이나 상사를 찾아가 상담하거나 업무 관련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내부자 우선 지원 프로그램'도 만족도가 높다. 승진 기회나 빈자리가 생기면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공모한다. 능력만 있으면 연공서열이나 성별.직종을 따지지 않고 승진시킨다."

-'직원 존중'의 철학과 리더십은 어디서 배웠나.

"페덱스에서 일하는 20년 동안 외국인 상사를 여러 번 모시며 다양한 리더십에 대해 배웠다. 공통적으로 아랫사람을 잘 챙기는 기업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 예컨대 페덱스에는 비행기를 새로 사면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전 세계 670대 비행기 중 내 아들의 이름을 딴 '양재'호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당시 홍콩에 있던 상사의 마음 씀씀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비행기 사진을 어렵게 찍어 예쁜 액자를 만든 다음 일부러 한국까지 들러 전해줬다."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를 나온 채 사장은 원래 파리 유학을 거쳐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졸업 무렵 집안 형편상 꿈을 접어야만 했다. 플라잉타이거란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하던 중 이 회사가 페덱스와 합병하자 자동적으로 페덱스 직원이 됐다. 그는 페덱스의 '내부자 우선 지원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했다. 28세에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국내 취항 항공사 최연소 부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후 북태평양 지역 인사 담당 상무와 한국 법인 사장까지 '한국인 최초'란 화제를 몰고 다녔다. 눈물 나는 노력과 도전이 숨어 있었다. 매일 영어학원 새벽반을 다니면서도 출근은 남보다 1시간 정도 빨랐고 업무시작 전까지 조간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그러기 위해선 오전 5시쯤엔 어김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외국계 기업이 연공서열을 덜 따진다고는 해도 20대 부장은 지금도 흔치 않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미국인 지사장이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지나가는 말처럼 '너도 부장 공모에 지원할거니' 하고 물어보더라. 그 말을 듣고 '나도 할 수 있구나'란 자신감을 얻었다. 당시 페덱스에서도 20대 여성의 부장 지원은 파격적이었다. 인터뷰를 두 시간이나 했는데 까다로운 질문이 많아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억지로 답하지 않고 '나중에 회사 매뉴얼을 참조해 해결하겠다'고 솔직하게 임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인데도 외국계 기업 CEO가 됐다.

"내가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모든 중요한 일은 오전에 끝낸다는 것이 철칙이다. 영어학원 새벽반도 10년 넘게 다녔다. 경영진이 되고 나선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기 위해 MBA도 했다. 지금은 대학생인 아들이 한창 공부할 때는 바쁜 엄마 때문에 힘들어 할 때도 많았다. 퇴근하면 단 5분이라도 꼭 아들과 대화했다. '엄마는 바쁘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줬다."

-임원이나 리더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똑똑한 여학생 인재가 많다. 하지만 사회에선 아직까지 여성이 소수인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긍정적 시각과 부지런함.열정의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싶다. 이 세 가지는 남성도 할 수 있지만 여성에겐 한 가지가 더 있다. 열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passion인데 여기에 com을 붙이면 배려를 뜻하는 compassion이 된다. 배려의 리더십은 여성이 남성보다 앞설 수 있는 덕목이다."

WHO?

1962년 서울 출생.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85년 대한항공에 입사했으나 잦은 교대 근무로 자기계발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1년 만에 외국계 화물 전문 항공사인 플라잉타이거로 옮겼다. 91년 페덱스코리아에서 최연소 부장으로 승진했다. 회사를 다니며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와 국내에 개설된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페덱스코리아 지상운영부 이사로 승진했고, 2004년 북태평양 지역 인사 담당 상무를 거쳐 2006년 첫 한국인 사장으로 발탁됐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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