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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월가에서 겪은 미국의 금융위기 <5>] 연준과 정부의 위기 대응

주요 은행에 공적자금 2500억불 긴급 수혈

자본 잠식으로 금융기관들 제 기능 못해
예금 보장 한도 없애고 경기부양법 발효
적극적인 개입으로 제2의 대공황 막아


◇연준의 독창적인 비상 대출제도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배젓(Bagehot)이라는 이름의 시사 평론 칼럼이 있다. 이 주간지 편집장을 역임했던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정치·경제 평론가 월터 배젓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배젓은 ‘롬바드가’라는 저서에서 금융 위기에 봉착했을 때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지불 능력이 있는 은행에 벌칙 금리로 담보대출을 조속히, 그리고 제한 없이 제공해야 한다.” 위기 때는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젓의 처방은 훗날 모든 중앙은행에 위기 극복 교과서가 됐다.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2007년 말 이후 서브프라임 사태로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위기 대응 조치가 봇물을 이뤘다. 뉴욕 연준 시장그룹에서 독창적인 비상 대출제도를 발표하면서 홈페이지에 예상 질의응답까지 포함된 자료를 싣곤 했다. 당시 투자은행 채권거래 담당자들은 연준 자료의 내용과 시사점을 파악하는 데만 매일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투덜거렸다. 이들 대출제도는 대부분 네 글자의 영문 이니셜로 불렸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일쑤였다.

먼저 연준은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사태 발발 이후 재할인 대출 확대 및 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금융완화정책을 썼다. 은행의 손실이 늘어나고 자금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2007년 12월 TAF(Term Auction Facility·기간물 대출)와 통화스왑(ECB 및 스위스 중앙은행 대상)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위기 때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투자은행에 자금을 공급(PDCF: 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했으며, 국채를 대여하는 프로그램(TSLF: Term Securities Lending Facility)도 마련했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스템으로 위기가 번지자 연준은 대응 수위를 높였다. 대차대조표를 이용해 비상 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돈을 찍어냈다. 9월 18일에는 주요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왑 라인 규모를 확대하고 TAF 한도를 증액했다. 리저브프라이머리펀드의 상환 불능 사태로 단기금융시장의 ‘돈맥경화’가 극심해지자 9월 19일 머니마켓펀드 지원제도(AMLF: ABCP Money Market Fund Liquidity Facility)를 부랴부랴 도입했다.

이어 10월 7일에는 CP 직접매입제도(CPFF: 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로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우량 CP를 직접 매입했다. 그간 디커플링을 보였던 신흥시장국에도 외환 위기 재발 우려가 나타나자 연준은 10월 29일 한국·멕시코·브라질·싱가포르 중앙은행과 통화스왑 라인을 개설해 달러 유동성을 지원했다.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정책

2008년 12월, 금융 위기 여파로 실물경기 침체 골이 더욱 깊어지자 연준은 전례 없는 초강수를 두었다. 12월 16일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신용시장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이른바 양적완화정책을 발표했다. 명목금리를 더 이상 낮출 수 없기 때문에 돈의 양을 늘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비전통적인 방식이다.

이는 장기불황을 앓고 있었던 일본 경제가 1999~2006년 추진했던 초완화정책과 유사하다. 일본은행은 단기 국채 매입을 통한 초과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했으나 신용흐름 개선과 경기회복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연준의 정책은 수급 기반이 무너진 MBS, 정부기관채, ABS 등 특정 시장의 채권을 직접 매수함으로써 시장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2002년 미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논쟁이 한창일 때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버냉키 의장은 통화 증발을 통해 디플레이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 확대 재정정책과 병행될 경우 금리 상승을 상쇄시켜 경기 부양 효과를 유발시킨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연준이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매입한 자산은 국채 3000억달러, 정부기관채 1750억달러, MBS 1조2500억달러로 모두 1조7250억달러에 달한다. 2009년 GDP 14.1조달러의 12%를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이에 따라 연준의 자산 규모도 리먼 파산 전 약 8000억달러에서 올 7월 말 현재 2조3700억달러로 무려 3배 가까이 팽창했다.

◇공적자금 투입과 스트레스 테스트

중앙은행은 위기 초기에 비상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상당수 금융기관의 자본 잠식으로 금융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팔을 걷어 부칠 수밖에 없다.

2008년 10월 14일, 폴슨 재무장관은 월가의 9개 대형은행을 포함한 주요 은행에 모두 25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자유 시장경제의 기치를 내건 공화당 정부가 일부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한 셈이다. 10월 14일 연방예금보험공사는 무이자 예금의 보장 한도를 철폐하고 금융기관 신규 발행 채무지급보증제도를 도입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 17일 감세, 사회간접자본 투자 및 주정부 지원을 골자로 하는 7800억달러의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했다. 재무부는 씨티그룹과 AIG의 추가 공적자금 투입으로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재연될 소지를 보이자 2월 25일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한 제2차 자본확충 방안을 발표하였다.

마침내 5월 7일 재무부와 연준은 11개 은행지주회사에 746억달러의 추가 자금조달이 필요하다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금융시스템이 멀쩡하다는 공인인증서를 받은 시장은 회복 모드로 돌아섰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의 위력은 1990년대 초 스웨덴의 금융 위기 극복 사례에서도 입증된 바 있고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 우려 진화에도 한몫했다.)

연준의 초금융완화와 정부의 재정확대에 힘입어 미국 경제가 제2의 대공황에 빠지는 상황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응급실에서 이제 겨우 중환자실로 옮긴 환자의 모양새다. 아직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의 상처가 깊어 민간의 자생력이 회복되지 못하고 성장동력도 훼손됐다. 게다가 위기 후에는 성장 둔화에 따른 세수 감소로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날 태세다. 민간발 금융위기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이 국가채무 위기를 겪는 연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dshong@b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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