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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김의 할렘에서 월스트릿까지] <5> 미스 김 라일락…센트럴파크에 피어난 '한국의 꽃'

북한산에서 채취한 씨 미국서 개량…관상용 인기

예전 외국 어느 땅에 너무도 아름답게 잘 자라고 있는 무궁화에 감동하여 이를 관리하는 측에 감사 편지까지 보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그분이 센트럴파크에 오셔도 장문의 글을 쓰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연의 주체는 전 세계 250종이나 자생하고 있는 무궁화의 한 종류가 아니라, 우리 땅에서 우리도 모르게 수출되어 나간 ‘미스 김 라일락’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 뭉클한 사연이 되지 않을까.

라일락,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라고 불리는 이것은 해방 직후 미군정 직원 미더 박사가 북한산 자락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미국에서 개량한 것이다. 당시 그는 자기 밑에서 일하던 한국인 타자수 호칭을 따서 ‘미스 김 라일락’이라 명명했다.

이렇게 미국땅에 흘러들어간 미스 김 라일락, 좋은 보랏빛 향기와 아담한 크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정원을 꾸밀 때, 특히 분수 주변을 장식하는 데 쓰이며 인기가 높다. 이렇게 라일락은 그 유명한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당당히 입성하게 된다.

나움버그 밴드셸에서 약간 서쪽으로 가면 독수리와 먹잇감을 표현한 이글스 앤 프레이(Eagles and Prey)라는 이름의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의 대각선에 조성된 ‘싱어 라일락 길(Singer Lilac Walk)’은 1970년대 넬 싱어라는 사람의 기부로 만들어졌다. 특별한 팻말이 없기 때문에 찾아가는 시기가 봄이 아니라면, 그 야트막한 라일락 나무들이 군집한 모양으로 찾아야 한다.



이곳에는 미국에서 제일 흔한 네덜란드산에서부터 ‘링컨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라일락, 프랑스에서 개량된 향기 없는 중국산 라일락까지, 꽃이 피는 시기와 색깔에 따라 다양한 종이 살고 있다. 그리고 마치 한국 입양아들이 세계 각지에서 살아남아 그 존재감을 어느 날 우리에게 알려주듯, 이 ‘미스 김 라일락’ 역시 자신의 깊은 향으로 무시 못할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물론 우리의 고유한 종자가 우리 모르게 해외로 반출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자원이 우리 힘이고 경쟁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나와 우리 도움 없이도 미국 시장을 장악한 미스 김 라일락, 참 기특하다. 현재 미국의 대형 마트 안에 있는 원예 코너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기 있는 이 꽃을, 한국의 것이라 널리 알리며 앞마당에 잘 심어보는 건 어떨까. 한국인의 이미지란 미스 김 라일락처럼 짙은 향내를 풍기는 것. 우리는 라일락처럼 심성 그윽한 민족이라고 말이다.

예전에 어학원에서 어느 미국 선생이, 미국사람들이 일본문화를 몹시 떠받드는 탓에 미국말이 일본 단어를 많이 끌어안았다며 ‘만가, 쓰나미’를 비롯한 예를 수십 개씩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나를 힐끗 쳐다보며 “그런데 한국말은 그런 예가 별로 없어” 하는 거였다. 지금까지 미국말 안에서 김치·불고기·태권도·재벌 정도가 한국어로 뿌리 내린 말로 볼 수 있겠다. 이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 우리나라의 위상도 느껴질 것이다. 이제 우리도 조금씩 우리의 세를 만들어나가자. 중국이나 멕시코 사람처럼 숫자로는 안 되니 소수정예 문화예술 천연자원 콘텐트로 조금씩 파고드는 것이다.

“미스 김 라일락! 보살펴준 적도 없는데 이렇게 멋지게 살아남아서 정말 기특하고 고마워요. 수고스럽겠지만, 앞으로도 그 좋은 향기를 전 세계인이 찾는 센트럴파크에 계속 내뿜어주세요!”

☞안나 김은 한양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LG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부동산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뉴요커도 모르는 뉴욕’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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