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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그린 등산클럽' 시애틀 고산 여행기…만년설, 한 폭의 수묵화로 펼쳐지다

짙은 녹색 삼림 사이 '태고의 신비'를 걷다

이달 중순 들어서야 조금씩 땡볕을 선보이며 수은주를 달궈 간다.

지난 독립기념일 연휴를 틈타 LA ‘에버그린 등산클럽’회원 31명이 만년설로 겨울 기운 성성한 시애틀의 고산 등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계절을 거스른 여정에 기자가 동행했다.

_만년설에 젖다
마운트 베이커(Mt. Baker)




부옇게 흐려진 창문을 문지를 때마다 흑백의 바위산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짙은 녹색의 우림이 빼곡히 들어찬 계곡 사이를 이리저리 내달리던 542번 국도는 비지터 센터가 있는 스키장 언저리에 이르러서야 길을 멈춘다. 스노게이트 너머로 눈 속에 하반신을 묻고 있는 불도저가 길을 막고 서 있다.

문을 열자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차 안으로 들이친다. 외투에다 장갑까지 끼는 부산을 떨고서야 밖으로 나선다. 불과 두어 시간만에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에서 만년설 천지인 겨울로 계절을 거슬렀다.

한여름에 겨울 눈세상을 만나다니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 게다가 차에서 내리자 마자 눈을 밟다니. 1마일쯤 하이킹을 한다는 일행을 따라 나섰지만 얼마 못 가서 발목까지 빠지는 터라 발걸음을 멈춘다. 고도를 겨우 4300ft를 갓 넘겼는데 만년설 천지라니. 위도가 높아서 그럴테지만 어쨌든 세상 조화가 신비롭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흑백의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계곡 건너 맞은편으로 구름모자를 눌러 쓴 베이커산이 동쪽으로는 이곳 한인들은 석산이라 부르는 마운트 슉산(Mt. Shuksan)이 역시 정상 부분이 구름에 가리운 채 고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 선 마운트 라라비(Mt. Larrabee)는 캐나다와의 국경에 걸쳐 있다.

사철 눈세상인 이 곳은 연 평균 강설량이 647인치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중의 하나로 지난 1999년에는 1140인치가 내려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연중 스노스포츠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산 둘레로는 마운트 레이니어(Mt. Rainier) 다음으로 많은 빙하를 거느린 빙하천국이기도 하다. 멈춰 선 스키리프트 아래 언덕에선 아빠랑 눈썰매를 즐기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청량하다.

▷산행문의: 에버그린 등산클럽(323)731-3451


_다도해를 가르다
샌 후안 제도(San Juan Islands)


샌 후안 제도는 워싱턴 주의 북서쪽 캐나다와의 국경에 연해 있는 다도해다. 둘째 날 인심 후한 모텔 사장의 배려로 풍성한 식사에 바나나와 삶은 계란까지 점심으로 챙긴 일행은 일찌감치 애나코테스 항구로 길을 잡는다. 하늘은 언제라도 한줄기를 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더니 항구에 이를 즈음 기어이 후드득 차창을 때린다. 일행은 여름철 소나기라도 만난 양 즐겁기만 하다. 이 다도해에 만조가 되면 섬이 무려 450여 개나 되지만 이중에서 15개의 섬에만 정기 연락선인 카 페리가 운항한다.

주 교통국에서 운항하는 페리 선단은 크게는 승객 2500명 차량 260여 대를 운송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소형까지 모두 23척이 이 다도해를 운항한다. 연 평균 28만여 명을 수송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정기운항 선단이다.

목적지는 450여개의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오르카스 섬(Orcas Island) 차량에 탄 채 요금을 지불하고(일~화 차량 39.30달러 승객 12.15달러. 수~토 차량 44.15달러 승객 13.45달러) 배에 오른다. 크고 작은 무인도 사이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간다. 어떤 섬은 겨우 몇 채만 보금자리로 삼은 채 바다에 떠 있다. 문득 '저이들은 뭘 해먹고 사나'하는 실없는 생각에 잠긴다.

내 인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벌들 잉잉대는 숲 속에 홀로 살으리 (후략) -이니스프리의 호도

영국 시인 예이츠가 꿈꾸던 전원 생활이 이랬을까.

연락선은 두 곳의 섬을 들른 뒤 1시간여 만에 오르카스 섬에 닿았다. 제일 큰 섬이라고 하지만 항구를 벗어나자 한가롭기 짝이 없다. 달력에나 나올 법한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짙은 삼림사이로 햇볕도 들지 않는 길을 달려 이 섬의 최고봉 마운트 컨스티튜션(Mt. Constitution 2409ft.)에 섰다. 섬 전체를 내려다 보는 정상에는 360도의 전망을 자랑하는 전망대 오르카스 타워가 서 있다.

과연 한 바퀴를 빙 둘러도 거칠 것 없는 조망이 압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도해 너머 보여야 할 레이니어 베이커 산 등은 구름에 가려 볼 수가 없다.

_대자연에 안기다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North Cascades N.P.)


톱니처럼 날카롭게 맞물린 준봉 깊은 계곡 폭포 거기다 자그마치 300여 개의 만년 빙하가 산 자락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이다.
오전에 샌 후안 제도에서 돌아 온 일행은 20번 노스캐스케이드 하이웨이를 따라 산길을 달리고 있다. 캐나다와 국경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 국립공원은 태고적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야생 동ㆍ식물의 보고다.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는 이 20번 도로가 유일하다. 계곡이 가팔라서 나머지 몇 개의 도로는 겨우 캠프장에서 멈춘다. 그나마 이 도로는 겨울이면 엄청난 폭설을 견딜 수 없어 폐쇄된다고 한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강줄기는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몇 차례 거듭하더니 저기 발 아래 호수로 이어진다. 디아블로 레이크(Diablo Lake) 전망대 에메랄드 빛 선명한 호수에 발을 담근 산봉우리는 아직도 정상 언저리는 눈천지다. 난간을 따라 구절초가 화사하게 피었지만 몰아치는 찬바람은 일행을 차안으로 몬다.
디아블로 레이크는 북쪽으로 로스 레이크(Ross Lake)와 이어져 캐나다와의 국경까지 이른다. 가파른 계곡에는 계류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가 세 군데나 있다. 달려도 달려도 하늘을 찌를듯 솟은 원시림의 바다다. 오후 4시를 갓 넘겼지만 해는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돌아갈 길이 바쁜 일행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해변_원시 바다를 숨쉬다
디셉션 패스 주립공원(Dception Pass S.P.)

여행 마지막날인 사흘 째 오늘의 일정은 내해의 섬들을 따라 남하하는 20번 도로를 타고 가다 주립공원을 들르고 카페리로 에버렛(Everett)으로 건너간 뒤 보잉사를 견학하는 것.
한참 만에 일행은 스카깃 베이(Skagit Bay)로 이어지는 관문격인 디셉션 패스 주립공원에서 길을 멈춘다. 피달고(Fidalgo)와 휫비(Whidbey) 두 섬은 중간의 패스(Pass)섬을 거쳐 디셉션 패스 브릿지로 이어진다. 다리를 지나서 주차한 뒤 일행은 다리를 건너보기로 한다. 간조와 만조때마다 드나드는 바닷물이 이 좁은 물길을 이용하다보니 이곳이 과연 바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물살이 거세다. 마치 거대한 여울목 같다. 그 여울목을 180ft 높이에서 내려다 보니 현기증이 난다. 1935년 완공된 전체 길이 976ft에 이르는 이 철제 다리를 건너 보려는 방문객이 매년 2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일행은 다시 이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등성이에 올랐다가 해변으로 내려간다. 습기 촉촉한 해변에는 언제 적부터 있었는지 모를 나무 등걸들이 거대한 공룡의 뼈처럼 하얗게 널부러져 있다.
길게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변에는 서너명의 낚시꾼만 있을 뿐 철지난 해수욕장처럼 쓸쓸하다. 연신 고기를 낚아올리는 이들에게 다가가니 시애틀에 산다는 한인부녀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휴를 맞아 집에 온 딸과 아버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잠깐 나무 등걸에 앉아 '클레멘타인'을 소리낮춰 불러본다.
이렇게 원시의 대자연에 잠겼던 짧은 여행이 끝나간다.
글.사진 백종춘 기자 jcwhite1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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