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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삶을 지배하는 시계 속 시간

박유선

"시간은 인간이 쓰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하다." 아버지가 귀 닳도록 하던 소리다. 90세를 넘기신 아버지는 시간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집에서 종일 학자로서 책이나 보며 소일할까 별일은 없지 싶은데 바쁘단다. 그날 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서면서 불현듯 아! 그런 뜻이 아니었구나 인생에 있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 것을 못 알아 듣다니. 가슴이 허전해오며 그때서야 나의 아둔함에 혀를 찼다. 이제 내가 슬슬 그리 되어가지 싶다. 정말 시간이 없다는 말이 툭하면 튀어나오니 말이다.

시간 내 삶을 철저히 지배하는 시계 속에 담긴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오늘도 게으른 난 잠에서 깨며 시계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하루의 첫 대면은 언제나 그렇다. 종일토록 거울은 한 두어 번 볼까말까 하지만 시계엔 나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있는지 시시때때로 본다. 혹여 하루 일분이라도 자칫 잘못 쓰다간 생의 끝 자락에 가서 시간을 탕진한 죄에 걸릴까 두렵다. 아니 그보다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전적으로 내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기에.

막강한 힘을 지닌 시계는 문명의 발생 당시부터 약 6000년이나 사용된 장구한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물시계 신라 때 해시계 조선시대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의 일종인 자격루 시계 이상의 정교한 천문장치를 겸한 장영실의 옥루 행루라는 휴대용 물시계도 있다. 세종 때의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한다. 국보 '혼천시계'는 조선 현종 10년 천문학자인 송이영이 만들었다. 두개의 추가 있으며 태양계처럼 생겼다. 까마득한 옛날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은 그렇듯 해와 달의 움직임을 보며 하루를 나누고 일년을 가늠하여 인간의 시간을 찾아냈다.



14세기 초부터 만들어졌다는 기계시계. 1631년 인조 때 정두원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자명종을 가지고 온 것이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시계를 들여온 유래다. 실은 그보다 앞서 이마두(마테오 리치)라는 선교사가 처음 보는 신기한 자명종을 가져왔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그림자가 알려주는 해시계 이집트에서 시작한 물시계 갈릴레오의 진자시계 현대의 원자시계를 만들었다.

시계가 오른쪽 방향으로만 도는 것처럼 나도 바른쪽 방향으로만 삶의 기수를 향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시계는 왜 오른쪽 방향으로만 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건 최초의 시계가 만들어진 곳이 북반구이기 때문에 모든 시계는 오른쪽으로만 돌도록 만든다고 한다. 북반구의 경우 그림자가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그림자의 방향을 따라 시계의 숫자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원리라 한다.

그 옛날 시계가 귀하던 시절 어쩌면 시간보다 시계가 더 소중한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에선 시골 새색시 닮은 분꽃을 '4시 꽃(4 O'clock Flower)'이라고 한다. 그 옛날 우리 농촌에서는 새벽 수탉이 홰치며 계명성 울리는 소리에 하루의 시작을 알았고 저녘무렵 분꽃 피는 걸 보고 저녘을 지었다. 그런데 이젠 흔해 터진 것이 시계다.

시대마다 시계의 모양은 변해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의미는 갈수록 더 귀하고 귀해진다. 손짓으로 기상시간을 그 다음엔 무얼 하라고 말없이 하루종일 나를 감시내지는 감독하는 시계. 하루 24시간을 이래라 저래라 빨리 준비하고 나가라 들어와라 전화해라 시시콜콜 지독한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눈을 부릅뜨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조금이라도 개으름을 피울라치면 무언의 눈짓으로 채찍질한다. 생이 다할 때까지 동고동락해야 하는 시계는 수다와 참견을 딱 질색하는 내 성미를 아는지 말없이 지시한다.

언젠가 내가 일탈을 꿈꾸며 저 놈의 시계도 내동댕이치고 일력도 없는 어느 바닷가나 산속으로 도망가리라 했는데 결국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시계가 뭐라 나 그건 아니지 싶다. 다만 내가 어쩌다 시계 속 시간에 코가 꿰어서 괜스레 쩔쩔 매고 있을 뿐이다. 자투리 시간까지 아끼는 나는 아이들 피아노 교실이나 운동 데려다 주고 기다리는 그 시간에도 책을 끼고 다니며 알뜰히 쓰지 않았던가. 그런 버릇으로 해서 부족한 시간을 쪼개 쓰는 요령을 일찍이 터득했지 싶다. 아무리 책벌레라도 마냥 책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 1시간만 딱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시계를 보면 정확하다. 금쪽 같은 시간 관리의 비결은 결국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시계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춘 덕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싫든 좋든 하루를 한 생이듯 여기고 유한한 시계 속에 담긴 시간의 의미를 음미하며 소중히 갈무리 해야 후회없는 인생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약력>
▷ 월간 ‘수필문학’ 등단
▷ 미주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논픽션 수상
▷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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